이승기(31)란 이름 앞에 붙일 수식어를 고르기는 늘 어렵다. 가수라기엔 연기를 잘하고, 배우라기엔 예능감이 특출하고, 방송인이라기엔 그의 음악적·연기적 재능이 가려지는 느낌이니까. 그렇다고 ‘국민 남동생’이라 하기엔 너무 성숙한 사내가 되어버렸다.
“예전엔 저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그냥 이 모습이 저인 것 같아요. ‘만능 엔터테이너’인 거죠. 노래 연기 예능, 전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 하되, 얼마나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중이죠. 산술적으로만 봐도 남들보다 3배는 더 해야 하잖아요(웃음).”
전역한 지 채 5개월이 안 됐다. 지난해 10월 31일 특전사 복무를 마치자마자 드라마 ‘화유기’(tvN) 촬영에 들어간 그는 1월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SBS)에 합류하더니 지난달 말 영화 ‘궁합’까지 내놓았다. 전역 이후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그는 “데뷔 이래 요즘이 제일 바쁜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영화 홍보에 나선 이승기를 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피곤해 보인다는 말에 그는 미소로 답했다. “아이, 이 정도쯤이야.” 이승기는 “군대에 있으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단단해졌다”며 “나의 한계치가 올라가서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보통 군인들은 말차(마지막 휴가) 때 술 먹고 놀러 다니거든요. 전 그때부터 복귀 준비를 했어요. 체중부터 피부·체력 관리까지. 하루 2∼3번씩 운동을 했죠. …저에 대한 관대함을 버리게 됐어요. 예전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타협했다면 이젠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궁합’은 입대 전 찍어둔 작품이다. 그의 제대에 맞춰 개봉이 다소 늦춰졌다. 이승기는 “(외모가) 많이 달라져서 걱정했는데 이질감이 적어 다행”이라고 웃었다. 이어 “따뜻하고 유쾌한 느낌이 잘 전달된 것 같다”며 “청춘 영화라는 점에서 장르적 다양성에도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고 만족해했다.
조선시대 배경의 로맨스 사극 ‘궁합’에서 그는 사나운 팔자를 타고난 송화옹주(심은경)의 부마 간택을 돕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역술가 서도윤을 연기했다. “이렇게 시종일관 진중한 캐릭터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승기에게 저런 것도 어울리는 구나’ ‘이승기 영화는 볼 만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서도윤은 역학 분야의 천부적인 실력자. 평소 “천재를 동경해 왔다”는 이승기의 흥미를 자극할 만했다. “예술적 재능을 지닌 분들을 보면 신기해요. 저는 특출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다듬으면 되겠다’는 가능성 정도? 약간의 재능과 끊임없는 반성으로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야심차게 선보인 복귀작 ‘화유기’는 스태프 부상과 초유의 방송사고 등 초반 악재를 겪었다. 그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배우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좌우되기 때문에 나부터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다행히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 스태프들이 일주일에 하루는 쉬면서 일했다”고 전했다.
‘이승기가 예능에 복귀한다면 보나마나 나영석 PD, 강호동과 함께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홀로서기. “군대 후임들이 ‘나가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더라고요. 저 역시 확신이 없는 건 똑같았죠. 뭘 하면 성공할지 예측할 수가 없으니까요. 명사의 삶을 통해 배움을 얻는 ‘집사부일체’의 콘셉트가 그래서 매력적이었어요.”
흔히들 ‘이승기가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런 기대의 말들이 본인에겐 적잖은 부담이다. 높은 기대만큼 잣대는 까다로워지니까. “저도 모르게 힘 빠질 때가 있어요. 그래도 대충할 수가 없죠. 늘 그런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것 같아요. 예능 촬영할 때마다 두통에 시달려요. 버거울 때도 있지만, 즐거우니까 하는 거죠.”
‘바른 청년 이미지’에는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인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하고 싶은 걸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그는 올해 앨범도 발매할 예정이다. 아직은 구상 중인 단계인데 장르는 발라드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금은 ‘페이스 조절 따윈 없다’는 느낌으로 달리고 있는데(웃음) 확실히 체력 안배는 필요하겠죠. 근데 올해는 좀 더 달리고 싶네요. ‘예전보다 성장했다’는 평가들을 해주시니 더 욕심이 나요. 제 몸과 정신이 따라주는 한, 최대한 많은 걸 해볼 생각입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