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연상케하는 작품
시나리오 덮자마자 ‘이건 꼭 해야 돼’ 결심
오랜만에 하는 멜로라 감정과잉 경계
물 흐르듯 현실감 있는 인물 그리려 노력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확인한 뒤 기쁨에 찬 얼굴로 빗속을 내달리던 소녀. 영화 ‘클래식’(2003)의 그 장면을 기억한다. 배우 손예진(본명 손언진·36)이 자타공인 ‘멜로 퀸’에 등극한 순간. 이후 10여년간 미스터리 스릴러 액션 사극 전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그의 지위는 공고했다.
손예진의 멜로를 기다린 이들에게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작품일 테다. 배우 본인도 마찬가지라고. “빗속을 뛰는 장면이나 기차역 재회신에선 저도 ‘클래식’이 생각났어요.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켜준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저도 관객의 눈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그 자체로 너무 좋아서.”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손예진은 “멜로를 늘 하고 싶었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가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 버금가는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흔든 작품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시나리오를 덮자마자 ‘이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원작 영화를 봤지만 거의 기억나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이었나’ 싶었죠.” 일본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2005년 현지에서도 영화화됐던 바로 그 작품이다.
극 중 손예진이 맡은 배역은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에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 아내 수아. 기억을 잃은 수아를 남편 우진(소지섭)과 아들 지호(김지환)는 살뜰히 보살피고, 세 식구는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장맛비가 그칠 때까지. 끝이 예견된 행복은 뭉클하고도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오랜만에 하는 멜로라고 욕심을 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내가 이 장면에서 뭔가 보여줘야지’ 하는 순간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감정 과잉을 경계하며 물 흐르듯 연기했어요. 관객이 쉽게 이입할 수 있도록 현실감 있는 인물로 그리는 것도 중요했죠.”
손예진은 “나이 들수록 사랑의 의미가 변질되고 퇴색되지 않나. 이 영화는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관객들도) 그 마음을 가지고 가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멜로의 여왕’ ‘첫사랑의 아이콘’ 같은 수식어는 이제 익숙하다. 그러나 안주할 생각은 없다. “저의 멜로를 많이들 좋아해주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배우는 스포츠 선수처럼 종목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주어지는 장르와 캐릭터에 맞춰 연기할 뿐이죠. ‘난 첫사랑 전문 배우야’라고 의식하진 않아요(웃음).”
이번 작품을 통해 결혼에 대한 생각도 얼마간 달라졌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소중한 존재가 되는 일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아직까지 엄마가 된다는 건 상상이 잘 안 돼요. 만약 아이가 생기면 올인 할 것 같긴 하지만.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거든요(웃음).”
천하의 손예진도 연애상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단다. 다가오는 이도 별로 없다며 투덜댔다. “멜로 호흡을 맞춘 상대역들이 전부 순애보적인 지고지순한 남자였어요. 자꾸 이런 연기만 하니 현실 연애를 못 하나 싶기도 해요. 나만 바라봐줄 사람을 찾으니까. 그래도 전 항상 꿈꿔요. 어딘가에 운명적인 남자가 있을 거라고요. 하하.”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