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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미래, 과거에서 찾아야… 기독 역사학자의 고언

옥성득 교수가 최근 방문한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학교 캠퍼스에서 포즈를 취했다. 옥 교수 뒤편으로 이 대학 설립자인 마포삼열(사무엘 마펫) 선교사 흉상이 보인다.


“한국 신학이 세계화되고 교회도 성숙해지기 위해선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가 우선입니다. 역사를 모르는 교회 공동체엔 미래가 없습니다.”

옥성득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LA캠퍼스(UCLA) 한국기독교학 석좌교수 얘기다. 최근 방한한 그를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교회가 걸어온 여정을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첩경”이라며 “하지만 역사신학 분야에서 한국 기독교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학과를 두고 있는 유수의 종합대학들에서도 관련 교수가 없고 심지어 선교학 교수들이 대신 강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학대학마다 한국 기독교사 교수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뒤를 잇는 교수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옥 교수는 ‘한국 기독교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재미학자다. 그의 SNS와 블로그는 사료의 보물창고다. 1907년 평양 대한장로회신학교 학생들이 받았던 의학교육 자료나 1925년 평양 신학교 졸업반 38명 분석, 1943년 4월 3일 개신교 대표들의 신사참배 기념사진, 1901년 브라운 선교사가 황해도에서 촬영한 사진 등 희귀한 사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빛을 보는 ‘1차 사료’들은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제가 사료를 수집하느라 너무 고생이 컸어요. 사료를 공개하는 이유는 후배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어서이기도 해요.” 실제로 그는 미국 보스턴대 박사과정 때 집에 복사기까지 가져다 놓고 하루에 1000장 가까이 복사하면서 사료 수집에 매달렸다.

한국 사료들은 여전히 미국에 많다. 선교사들이 귀국할 때 개인 자료들을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미국 선교부와 선교사 간 오간 서신과 공문도 현지 총회 건물에 보관돼 있다. “코네티컷 예일대와 필라델피아 미국장로교사료관에 한국 기독교 사료가 많고, 감리교 자료들은 뉴저지 드루대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사료가 넘쳐납니다. 이런 사료들은 저작권 문제로 복사할 수 없으니 현장에서 공부해야 해요. 연구할수록 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역사학자인 그는 현실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옥 교수는 “지금의 한국교회가 1930년대 초반 교회와 매우 비슷하다”고 했다.

“그 시절 한국교회는 급격하게 교권주의와 기구주의로 빠져들었죠. 장로교의 노회 회의록만 봐도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 일어난 분쟁의 기록이 많아요. 신문엔 교인들 사이에 벌어진 다툼 소식도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세속화가 문제였어요. 그런 면에서 지금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제대로 무너지는 겁니다. 철저한 회개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그런 뒤 바닥에서부터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저력이 있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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