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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사이… 코드 원 어디로

‘공군 1호기’ ‘코드 원’으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 항공사 로고 없이 ‘대한민국 KOREA’라고만 적혀 있지만 대한항공 소속 보잉747-400 여객기다. 임차해 사용하는 것이어서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 전용기라기보다는 전세기다. 더 이상 빌려 쓰지 말고 전용기를 구매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일보DB





65년간 이어졌던 정전체제의 종식과 한반도 신(新) 데탕트가 가시화되는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외교 공(功)을 부인하긴 어렵다. 문 대통령은 취임 1년여 만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주요 4개국에 모두 날아가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지 작업을 벌였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베를린 선언'을 내놓고, 유엔총회에서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촉구해 실현시켰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이후 정상외교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대통령 전용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용기를 임차하는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 일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추문이 나오고 있어서다. 해외 순방에 나간 대통령이 대한항공 전용기 문을 열고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심란하다. 대안으로 여겨지는 아시아나항공 역시 성추문에 휩싸여 이미지가 나쁘긴 마찬가지다.

국격을 생각한다면 자체 전용기를 한 대 구입할 만도 하지만 전용기 말만 꺼내면 여야 간 정쟁의 소재로 전락하니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용기 임차계약이 2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는 향후 전용기 문제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선택지는 대한항공으로부터 재임차하거나 임차기업을 교체하는 방안을 우선 들 수 있다. 아니면 자체 전용기를 구입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역린만 건드린 대한항공

청와대가 대통령 전용기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는 것은 조 회장 일가가 받고 있는 여러 의혹의 ‘죄질’ 탓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조세포탈, 횡령, 배임 같은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자체가 중범죄다. 과거 기업 총수들이 검찰에 구속되는 대표적인 ‘범죄 세트’다. 서울남부지검은 이런 혐의를 잡고 지난달 말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조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은 공정사회와 서민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정부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 대한항공에 대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시점도 조 회장의 차녀 조현민 전 전무의 갑질 논란이 시작된 때였다. 조 전 전무가 대한항공 광고 수주업체 팀장에게 물을 뿌리고 고성을 지르거나 나이가 많은 임원에게도 욕을 하는 등 잇단 갑질 의혹이 터져 나오던 시기다. 여기에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씨가 운전기사와 비서 등에게 고성과 욕설을 하는 등 갑질 의혹까지 새롭게 제기됐다.

조 회장 일가의 범죄 혐의와 갑질 정황이 매일같이 쏟아지자 결국 정부가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필리핀 가사 도우미 불법 고용 의혹으로 이씨를 수사 중이다. 이씨는 갑질 행위에 따른 상해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관세청도 검찰과 별도로 조 회장 일가의 밀수, 관세포탈, 외국환거래법 의혹 등을 조사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조 전 전무가 미국 국적자임에도 대한항공의 자회사 격인 진에어 등기임원 지위를 불법으로 누린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국토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이번 주 진에어의 면허 취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여권 관계자는 26일 “대한항공의 문제는 정부가 표방하는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의혹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라며 “민심이 엄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답이 없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 전용기를 교체하려 해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 대통령 전용기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김대중정부)→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교차 운행(노무현정부)→대한항공(이명박정부)으로 바뀌어 왔다. 문재인정부는 대한항공의 추문을 감안해 전용기 임차를 아시아나항공에서 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여의치 않긴 마찬가지다. 지난 2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여성 승무원 격려행사에서 부적절한 스킨십 등 성희롱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항공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나항공 직원들로부터 내부 폭로가 이어지자 박 회장이 결국 사과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한 문 대통령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사실이다. 또 경영 악화로 인해 대통령 전용기를 운용할 만한 역량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결국 대통령 전용기 구입이 유일한 해법이지만 문 대통령이 막아섰다.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2년차를 맞은 올 초 전용기 구입을 논의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대통령 전용기 구입안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전용기 구입을 시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용기 구입 문제로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알기 때문에 굳이 지금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전용기 구입·운용 비용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대통령 전용기 임차 비용으로 지난 10년간 2500억여원이 투입됐다. 이에 국회예산정책처는 대통령 전용기를 구매해 25년간 운용하면 임차비용에 비해 4700여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 전용기 유지·보수에 임차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는 반론도 청와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집권 직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축소 등 세출 규모 줄이기에 나선 청와대가 구입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거론되는 대안들

조씨 일가의 갑질 의혹이 대대적으로 불거진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란에는 대한항공 기업 명칭 변경, 면허 취소 등의 청원이 빗발쳤다. 특히 대한항공이 정부 상징인 ‘대한’ 명칭을 사용하는 데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1946년 관련 법령에 따라 설립된 대한항공공사를 69년 한진상사가 인수해 설립했다. 공사가 계속 적자에 허덕이다 보니 정부가 민영화를 한 것이다. 이 덕에 ‘대한’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올 초 청와대 실무진도 사명 변경 가능성을 검토해봤지만 사기업 명칭인 이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만약 청와대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재임차를 한다면 그때까지 조 회장 일가가 환골탈태하는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 일가가 2선으로 후퇴하고 경영권을 내놓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단순히 대통령 전용기 운용을 위해서나, 국민감정 완화를 위해 경영권을 내놓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정당국의 수사 확대는 변수로 지목된다.

현 전용기는 2001년식 보잉747-400 기종으로 주요 글로벌 항공사에서 순차 퇴역 중이다. 현재 4강외교와 신남방·신북방 정책 구현을 위한 참모진 수용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재임차가 이뤄지더라도 기종은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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