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분노의 방향



외출이 어려운 탓에 대부분 생필품을 인터넷 쇼핑으로 산다. 얼마 전에도 필요한 물건이 몇 가지 있어 인터넷 쇼핑을 했다. 늘 하던 대로 최저가 검색을 하고 배송비를 고려해 가장 싼값에 구매가 가능한 각각의 업체에 물건을 주문했다. 물건들은 이튿날부터 속속 도착했다. 그런데 세안제만은 일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송장 번호가 발부되어 곧 배송이 시작될 거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늦어도 금요일쯤엔 받아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물건은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사이트에 다시 들어가 보니 지난번과 같은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직원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업체에 알아본 후 연락을 주겠노라 대답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된 직원은 내게 연락하기로 했던 이가 아니었지만 내 목소리 톤은 이미 한껏 높아져 있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상담직원을 상대로 있는 대로 골을 부리며 주문을 취소한 뒤 전화를 끊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태로 시끄럽다. 기사들을 훑어보다 승객들 대하기가 겁이 난다는 승무원들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잘못은 경영진에게 있었지만, 승객들과 직접 대면하는 건 승무원들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온갖 항의와 욕설을 받아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특히 여성 승무원들을 상대로 거친 항의가 줄을 잇는다고 했다. 승객들의 불편과 불쾌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승무원들을 괴롭힌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승객들이라고 모를 리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더할 수 없이 입이 썼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아무 결정권도 없는 승무원들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은 그들을 비난했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겨우 2만 원짜리 물건 때문에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상담직원을 상대로 있는 대로 골을 부린 내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황시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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