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5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워싱턴DC를 출발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6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비핵화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는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기 전까지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을 계속 가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위원장은 5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만나 “내일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는 일정이 있으니 미국 측과 잘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 장관이 전했다. 김 부위원장은 남북 통일농구 평양 경기 방문단이 묵고 있는 고려호텔을 깜짝 방문해 조 장관과 환담했다.
북·미 고위급 협상이 시작되면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가 이용호 외무상으로 교체될 것이란 관측이 일각에서 나왔다.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후속협상의 당사자로 미국 측은 폼페이오 장관을 명시한 반면 북측은 ‘관련된 고위급 인사’로만 넣었다.
대북 소식통은 “한 라운드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선수 교체가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마무리가 안 된 상태”라며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고 이행 단계에 들어갈 때까지는 기존 라인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시절부터 이어져온 김 부위원장과의 긴밀한 소통 채널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날 신의주 현지지도 일정 때문에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농구 친선경기를 직접 관람하지 못했다. 김 부위원장은 “조 장관께 이해를 구하고 오랜만에 평양에 오셨는데 하고 싶은 얘기도 나누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김정은 위원장의) 조언이 있어서 제가 이렇게 왔다”고 했다. 조 장관이 “바쁜 데 와주셔서 고맙다”고 하자 김 부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도 중요하지만 우리 조명균 선생도 중요하시니 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두 사람은 남북 회담을 실용적으로 빠르게 하자는 데도 뜻을 같이 했다.
폼페이오 장관과 국무부 참모, 6명으로 구성된 기자단 등 미국 방북단은 6일 평양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4월, 5월 두 차례 방북은 당일치기였다. 폼페이오 장관 일행은 평양 동쪽 교외에 있는 고방산 초대소에서 묵을 가능성이 있다. 고방산 초대소는 북한 외무성이 외빈 방문 때 숙소로 활용하는 곳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에 맞춰 미 정부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의 협상 태도를 버리고 유연한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간)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에서 FFVD(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로 재규정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그동안 완전한 비핵화에는 동의하면서도 CVID라는 용어에 강한 반감을 표출해 왔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CVID 용어를 거론하지 않고 있으며 폼페이오 장관은 톤을 완화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그 배경으로 “한국 정부가 미 정부 관계자들에게 ‘모든 걸 즉시 폐기하라’는 식의 접근법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다만 NYT는 김 위원장이 정말로 태도를 바꿀 준비가 돼 있는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해 시간만 벌고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가장 큰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평양=공동취재단 권지혜 기자,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