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G2) 간 벌어지는 무역전쟁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우선 외환시장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060원대에서 최근 1120원대까지 치솟았다. 1130원을 넘어선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급격한 환율 변동, 원화 약세는 외국인투자자의 자본유출, 수입물가 상승 등으로 이어지고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9원 오른 1125.9원으로 마감했다. 장중에 1130.2원을 찍으며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장중 고점 기준으로 지난해 10월 27일(1131.9원)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1120원대 중후반을 ‘심리적 저항선’으로 본다. 마지노선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당분간 불확실성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변동성을 키울 것”이라며 “1120원대 중후반에 저항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향 돌파하는 모습을 보인 걸로 봐서 위쪽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1110원대 중반부터 1130원대 중반까지 오르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주요 원인은 G2의 무역전쟁이다. 갈수록 전면전 양상을 띠면서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발걸음이 빨라진 점도 달러화 강세에 무게를 싣는다.
미국과 한국 경제가 서 있는 위치도 환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2.9%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초보다 0.3% 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이와 달리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9%로 낮췄다.
여기에다 위안화 가치가 평가 절하되면서 위안화와 비슷하게 움직임을 보이는 원화 가치까지 떨어뜨렸다. 이날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를 전날보다 0.74% 내렸다. 1년6개월 만에 가장 큰 절하 폭이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압박에 ‘환율전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율조작 비판 등을 의식해 위안화 가치를 큰 폭으로 내리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은 3개월간 코스피시장에서 3조3300억원을 순매도했다.
더 큰 문제는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140원 수준으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KB증권은 이달 중순 이후에도 무역전쟁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협상 가능성보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지속에 초점을 맞췄다.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안전자산인 달러화의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
다만 다음 달 이후에 달러화의 ‘강세 압력’은 다소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과 일본 등의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는 데다 글로벌 불균형 완화 필요성을 느끼는 국가들이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