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하늘 광장으로 떠났다. 넉 달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고인이 23일 오전 영면했다고 유족들이 이날 밝혔다. 향년 84세. 그는 ‘광장’에서 전쟁과 분단을 불러온 이념 대립을 비판했지만 끝내 분단의 종식을 보지 못했다.
유족에 따르면 그는 근래 한반도 해빙 무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통일보다 재통일이 더 위대하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했다가 흐름을 거슬러서, 다시 한국이 통일된다면 참 위대한 일이다. 마치 삼단뛰기라는 운동의 원칙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뜀박질이라도 세 번째 한 것이 더 위대하다. 그것이 변증법이라는 말의 진정한 가치다.”
고인이 50년 넘게 소설 ‘광장’에 공들인 모습은 분단에 대한 투철한 문제의식과 완벽을 추구한 작가로서 그의 면모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광장’은 처음 발표 당시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이었다.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할 때는 800장 분량의 장편으로 늘었다. 이후 출판사를 옮겨 인쇄될 때마다 그는 개작에 가까운 수정과 교정을 거듭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4·19 직후에 쓰인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 무언가를 증언한다는 생각으로 숨 가쁘게 썼다. 하지만 나처럼 역사의 현장에 있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잘 아시지요?’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문학의 본령으로서 문학성을 보강한 것이다. 정신력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한 글자라도 좋은 모습으로 후대의 독자들에게 보이고 싶다”고 했다.
고인의 진지함과 염결성에 독자들도 응답해 왔다. ‘광장’은 통쇄 205쇄(2018년 7월 기준)에 100만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광장’으로 ‘전후 최대의 작가’라는 이름을 얻은 그는 정작 “내 문학적 능력보다는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그는 엄격한 스승이자 선배였다. 누군가 그의 작품이 좋다고 인사치레를 하면 당장 “자네는 어느 대목이 어떻게 좋다는 건가”라고 되물어 그 앞에선 허튼 말을 할 수 없었다. 대학에서는 신경숙 하성란 백민석 편혜영 조경란 천운영 등의 제자를 길러냈다. 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방대한 지식을 풀면서 논리 정연한 비판을 끝없이 이어가는 능변가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 여사와 아들 윤구, 윤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다. 장례는 문학인장(장례위원장 김병익)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25일 0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강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자하연 일산’이다(02-2072-2020).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