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보드와 선수는 하나가 되고, 한 마리 새처럼 높이 날아오른다. 손으로 보드를 잡거나 몸을 비트는 화려한 공중묘기가 도심 속 하늘을 수놓는다. 길거리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스케이트보드는 이제 놀이도구를 넘어 하나의 스포츠로 떠올랐다. 오는 18일 개막하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됐다. 우리나라는 평균 연령 15.5세로 구성된 4명의 선수가 가슴에 태극마크를 새긴 채 대회 첫 메달을 향한 꿈을 키우고 있다.
지난 2일 경기도 용인 엑스파크공원에서 만난 한국 스케이트보드 대표팀 선수들은 서로를 마주본 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한적한 공원에 선수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메아리쳤다. 뙤약볕 아래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는지 얼굴은 하나같이 까맣게 그을려져 있었다. 수없이 부딪치기를 반복한 스케이트보드는 성한 데가 없었다.
은주원(17) 유지웅(14) 최유진(17) 한재진(14)으로 이뤄진 남자 대표팀은 섭씨 35도의 뜨거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슬땀을 흘렸다. 김영민 대표팀 코치의 지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발걸음을 옮겼고, 각종 구조물을 타고 넘나드는 고난도 기술을 연마했다. 기술을 실패하거나 맨바닥에 쓰러지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곧장 일어나 스케이트보드 위에 다시 몸을 실었다. 성공할 때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반복 주행이 이어졌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이들이 처음부터 국가대표가 되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동네 형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고, 취미로 운동을 시작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다른 스포츠에 비해 자유롭다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고 난 뒤의 마음가짐은 사뭇 다르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스케이트보드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은주원은 “아시안게임을 통해 한국 스케이트보드가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 목표는 한국 최초의 메달을 따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옆에 있던 한재진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성공할 때까지 타겠다. 그러면 내 인생이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밝게 웃었다.
대표팀에는 2명의 여자 선수도 있다. 아시안게임에는 출전하지 않지만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실력을 갈고닦는 중이다. 이유리(29)는 국가대표가 되려고 간호사 일까지 그만뒀다. 대학시절 축제 때 우연히 스케이트보드를 접했고, 일하면서도 틈틈이 보드를 탔다. 이유리는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올까 싶었다. 가족의 지지를 얻어 과감히 일을 그만두고 국가대표가 됐다”며 “동생들과 함께 열심히 훈련하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조현주(11)는 대표팀 막내다. 하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기술이나 배우려는 열정이 언니 오빠들 못지않다. 조현주는 “오래 연습해서 어려운 기술을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높은 곳에 서면 무서울 때도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면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이 스케이트보드”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어 “나이가 어려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하지만 2020 도쿄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게 꿈”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국가대표팀의 소망은 선수들의 성장을 위한 저변 확대와 관심이다. 이는 스케이트보드 대표팀뿐만 아니라 국내 체육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김 코치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진학이 가능해야 선수들이 성과를 내고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갈 수 있는 길도 마련돼야 한다”고 희망했다. 한재진은 “좋은 성적을 거둬 스케이트보드가 지금보다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국민들께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스케이트보드 불모지에서 땀과 눈물을 바친 10대 국가대표 선수들의 화려한 몸짓과 열정에 국민들이 감동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스케이트보드 경기는
스트리트와 파크로 나뉘어 남녀 4개 메달 놓고 45개국 경쟁
난이도·구성·라인·스타일 평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스케이트보드 경기는 오는 28∼29일 팔렘방의 JSC 스포츠 롤러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예선과 결선으로 나뉘어 치러진다. 세부 종목은 스트리트와 파크로 나뉜다. 스트리트는 코스를 따라 배치된 각양각색의 구조물을 활용해 자유로운 연기를 펼치는 종목이다. 파크는 한정된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제한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남녀부 스트리트와 파크에 1개씩 총 4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총 45개국 젊은이들이 참가한다.
각 선수에게 경기당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연기 시간은 45초이며, 특별한 복장 제한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5명의 심판이 난이도, 구성, 라인, 스타일 등 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세 차례 시도 중 가장 높은 점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정한다. 규칙이 간단하고 선수가 원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종목이다.
한국 스케이트보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당장의 목표는 메달권 진입이다. 스케이트보드계에서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종목 저변을 확대하고 경쟁력 있는 선수를 길러내는 것을 장기 과제로 삼고 있다. 김영민 코치는 “우리 선수들은 스케이트보드를 즐기겠다는 취지로 운동을 시작했다. 합숙훈련이나 정해진 일정에 따라 훈련하는 것은 처음이다. 어린 선수들이 엘리트 스포츠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은주원은 “요즘처럼 체계적인 훈련은 처음 해본다. 보드를 타는 기술뿐 아니라 기초체력훈련 등을 병행해 어려움이 있지만 ‘진짜 국가대표’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임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체력 유지에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다. 체력 훈련을 본격적으로 받아본 경험이 적다 보니 인도네시아의 찜통더위를 이겨내고 고난도 묘기를 보여주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은주원은 “올여름 한국도 많이 더워서 적응하고 있지만 체력적 어려움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더 덥다고 해서 더 많이 먹고 힘을 키우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장 적응 문제도 걸림돌이다. 현재 국내에는 국제규격(1500㎡ 내외)에 맞는 종목 시설물이 없다. 대표팀이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이 아닌 촌외훈련을 하는 이유다. 은주원은 “국제규격의 경기장에 맞춰 어떤 플레이를 펼칠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지금은 훈련 환경이 미흡하지만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국내에도 국제규격의 시설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용인=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