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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와 자취] 국제분쟁 해결에 한평생 ‘미스터 유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12년 8월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유럽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외교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의 한 병원에서 짧은 투병 끝에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AP뉴시스


‘세상을 선(善)으로 인도하는 힘’ ‘어두운 시대의 특사를 자처한 중재자’….

당대 최고의 외교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18일(현지시간) 별세한 그는 가나 출신이다. 첫 아프리카계 유엔 최고 수장으로, 역대 사무총장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카리스마 넘치는 외양, 섬세한 언행, 강직한 성품 등 외교관으로서 필요한 역량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난은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 예산·행정담당관으로 유엔에 입성해 35년 뒤 평직원 중 최초로 사무총장에 올라 한평생을 국제분쟁 해결에 헌신했다. 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특사로 발 벗고 나서 억류된 서방 인질 900여명을 석방시켰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불법”이라며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의 민간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미스터 유엔’이라는 별칭이 생길 만큼 유엔 개혁에도 힘썼다. 아난은 사무총장 취임 직후 유엔 사무국 조직을 12개에서 5개로 통폐합하고 유엔본부의 직원 수를 1000여명 줄였다. 빈곤퇴치 질병예방 환경보호 등 2015년까지 세계 공동목표를 담은 ‘새천년개발계획’을 제시하며 제3세계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 문제도 아난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는 98년 제4회 서울평화상을 받은 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북한의 농업과 환경문제를 논의하자”고 말하는 등 햇볕정책에 대한 공감을 드러냈다. 지난 4월 아난이 이끄는 원로정치인 모임 ‘엘더스(The Elders)’는 비핵화를 위한 문재인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그가 짧은 투병 끝에 향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지도자들은 애도를 표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은 “아난은 누구에게든 대화와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길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성명에서 “그는 오랜 유엔 재임 기간 평화와 인간 존엄을 옹호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트위터에 “우리는 평화를 위해 고단한 길을 걸었던 친구를 잃었다”며 “분쟁이 있는 곳에 아난이 있었고, 그가 있는 곳에서 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기억한다”고 썼다.

외교부도 성명을 내고 “숭고한 정신과 업적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도 깊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아 강준구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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