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에서 만나자”던 약속을 지킨 펜싱 선후배는 결승전 피스트에서도 14-14의 스코어로 마주했다. 마지막 포인트를 남긴 상황에서 서로를 겨눈 칼이 어지럽게 맞부딪혔다. 심판 판정으로 결정된 마지막 포인트는 구본길(29)을 향했다. 구본길이 아시안게임 펜싱 사브르 3연패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20일(한국시간)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펜싱 사브르 개인 결승전은 구본길과 오상욱(22)의 대결로 이뤄졌다. 서로의 결승 진출을 축하하던 둘은 피스트에 오르자 냉정해졌다. 오상욱은 구본길의 공격 인정에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심리전을 펼쳤다. 오상욱에게 득점을 빼앗은 구본길은 주먹을 쥐고 고함을 질렀다.
8-9, 9-10…. 근소하게 뒤지던 구본길이 점점 집중력을 발휘하며 12-12 동점을 만들었다. 구본길은 공격적으로 달려 들어오는 오상욱을 상대로 침착하게 득점을 성공시켰다. 마침내 13-12로 리드를 잡았다.
노련한 구본길이 14-12까지 점수차를 벌렸지만 오상욱의 뒷심도 만만치 않았다. 벼랑 끝에 몰렸던 오상욱은 2연속 득점으로 14-14 동점을 만들어 냈다. 다만 동시타가 인정되지 않고 구본길의 마지막 득점이 선언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포효하던 구본길은 투구를 벗고 다가가 오상욱을 끌어안았다. 구본길은 이때 오상욱에게 “단체전 때는 금 색깔로 목에 걸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상욱은 경기 뒤 취재진을 만나 “나는 괜찮은데 형이 미안해 한다”며 웃었다.
앞서 전희숙(34)은 이날 여자 플뢰레 개인 결승전에서 중국의 푸 이팅을 8대 3으로 꺾고 한국 선수단의 펜싱 첫 금메달을 따냈다. 전희숙은 3-3 동점 상황에서 치료 시간을 요청해 칼을 드는 왼쪽 손목의 테이핑을 교체했다. 종료까지 52초를 남기고 4-3 리드를 잡았고 침착하게 승리를 거뒀다.
16강전에서 남현희(37)에게 승리를 거뒀던 전희숙도 동료의 금메달을 챙기겠다고 했다. 전희숙은 “현희 언니가 7번째 금메달을 따면 신기록인데, 단체전에서 따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회 첫날 10m 공기권총 혼성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 사격은 이날도 두 개의 은메달과 동메달 하나를 수확하며 순항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일부 종목은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 남녀 배드민턴은 단체전 8강전에서 각각 일본과 인도네시아에 덜미를 잡히며 40년 만의 노메달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한국 승마 대표팀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일본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아시안게임 6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