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창립 이래 국민들이 가장 의미가 있다고 본 헌재 결정은 무엇일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재가 “정부는 분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한 결정이 꼽혔다.
헌재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26일 ‘주요 결정 30선’을 공개했다. 이는 헌재가 네이버 지식인과 콘텐츠 제휴를 맺고 지난 10일부터 열흘간 국민 1만57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1인당 최대 5개를 선택했고, 위안부 배상 사건은 3848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2005년 당시 외교통상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일본 측이 협상 과정에서 ‘청구권’이 아닌 ‘경제협력자금’ 명칭을 집요하게 주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간 일본정부는 65년 한·일 협정으로 개인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본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행태에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한·일 협정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행위를 해야 한다”며 2006년 헌법소원을 냈다. 5년 심리 끝에 헌재는 “헌법과 한·일 협정 내용에 비춰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에 대해 양국 간 분쟁이 존재하는 경우 해결 절차로 나아가는 것은 작위의무(적극적 행위를 할 의무)”라며 정부가 필요한 외교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이끌어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은 735표 적은 3113표를 얻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도 포함해서다. 3위에는 2547표를 얻은 ‘공무원시험 응시연령 상한 위헌결정’이 꼽혔다. ‘간통죄 형사처벌 위헌결정’이 1780표로 4위,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이 1699표로 5위를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이 아닌 위안부 배상 사건이 1위를 차지한 배경에 대해 “헌재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우 헌재의 결정이 아니었다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탄핵 결정은 헌재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촛불이라는 국민의 작품”이라며 “위안부 사건이야말로 헌재의 존재 이유를 밝혀준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최근 대법원이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헌재 결정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