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매직’은 4강에서 멈췄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베트남 축구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위대한 여정으로 남게 됐다.
베트남은 29일 한국과의 준결승 전까지 조별리그와 16강전, 8강전 등 5경기에서 8득점·무실점으로 안정된 전력을 자랑했다. 상대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으며 뒷문을 잠근 뒤 역습을 추구하는 전술로 승승장구했다. ‘질식 수비’와 지치지 않는 체력에 바탕을 둔 실리축구로 조별리그에서 베트남 축구 사상 처음 일본을 1대 0으로 격파했고, 16강과 8강 토너먼트에서도 바레인과 시리아에 각각 1대 0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아시안게임 첫 4강에 진출하는 신화를 썼다.
이날 준결승에서도 베트남은 후반 초반까지 한국에 내리 3골을 허용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쩐민브엉이 후반 25분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얻은 프리킥을 절묘하게 성공시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이후 경기 종료 때까지 한국을 몰아세우며 일취월장한 베트남 축구를 또렷이 각인시켰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취재진과 만나 “선수들이 초반 위축된 플레이로 빨리 실점했다”면서도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줬다. 열심히 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하고,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 선수들이 한 발짝 더 발전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에 대해서도 “김학범 감독 이하 선수들에게 축하를 드린다”고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2위에 불과한 ‘축구 변방’ 베트남이 아시아 축구의 중심에 서기까지는 박 감독의 ‘파파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사령탑을 맡은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을 때도 베트남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절대 고개 숙이지 말라”고 격려했다. 선수들의 체력 보강 차원에서 아침에 쌀국수 대신 고기와 우유를 먹도록 하는 등 체계적인 훈련프로그램을 베트남 축구에 이식했다. 아시안게임 기간에는 박 감독이 마사지 기계를 들고 부상당한 베트남 선수의 발을 정성스레 문지르는 동영상이 온라인에 퍼져 감동을 주기도 했다. 베트남 축구팬들은 소셜미디어에 “제발 귀화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박 감독을 축구 영웅으로 대접했다.
베트남의 응원열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의 모습을 연상케할 정도로 뜨거웠다. 축구 대표팀의 연전연승에 시민들은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를 들고 거리에 뛰쳐나와 환호했고, 주요 도심과 광장은 오토바이 행렬과 붉은 폭죽이 가득한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국과의 준결승전이 현지시간으로 오후 4시에 열리는 점을 감안해 많은 회사들이 1∼2시간 단축근무를 실시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직접 경기를 보려는 팬들이 급증하자 베트남항공은 특별기를 띄우기도 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