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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목격자들’, 빅데이터 DNA 약물…



2016년 5월 경남 창원 ‘무학산 주부 살인 사건’의 진범이 189일 만에 잡혔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 장갑에 묻어 있는 범인의 DNA가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피해자의 옷과 장갑 등을 재감정한 결과 절도 혐의로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인 정모(47)씨의 DNA가 검출됐다. 애초 경찰은 현장에 있던 약초꾼을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처럼 굵직한 사건의 한가운데에는 과학수사가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태블릿PC’로 친숙해진 디지털 포렌식(휴대전화·PC 등 저장매체 또는 인터넷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부터 1991년 도입된 DNA 분석 등은 중대범죄 해결에 결정적 키(key·열쇠)를 제공해 왔다.

특히 강력살인 사건에서 과학수사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2001년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에서도 DNA는 핵심 단서였다. 대검의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돼 있던 김모(41)씨의 DNA와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대검 DNA 분석과 관계자는 5일 “DNA는 보이지 않는 목격자”라며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이상 DNA 감식의 한계는 대부분 극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화학 물질을 분석, 마약 사건에 주로 쓰이는 ‘법 화학감정’은 2015년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농약 사이다 살인 사건’에서 범인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모(85) 할머니의 옷에서 피해자들이 마신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는 중요 증거가 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들의 피해를 입증하는데도 이 수사 기법이 쓰였다.

최근 주목받는 대표적 과학수사는 사이버·디지털 수사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열쇠였던 태블릿PC의 경우 법정에서 실제 소유 여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자, 법원은 대검에 감정을 의뢰했다. 디지털 포렌식을 거쳐 결국 최씨 것임이 입증됐다. 현재 진행 중인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 거래’ 의혹 수사에서도 디지털 포렌식 작업이 주목받았다. 당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정황이 담긴 문건들이 포렌식으로 복구된 PC에서 다수 발견됐다.

2016년 LG화학이 이메일 해킹으로 240억여원 무역대금을 사기 당한 사건에서는 이메일에 심어진 악성코드가 숨겨진 목격자였다. 이를 분석해 피해경로를 추적한 결과 나이지리아 국적을 가진 한 해커가 나타났다.

과학수사가 탄탄대로만을 걷는 건 아니다. 과학수사기법만큼 범죄수법도 다양해지고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과학수사가 투입될 사건은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지만 전문 인력은 부족하다. 대검 디지털 수사과 관계자는 “디지털 포렌식 전문 수사관 1명을 양성하는 데는 통상 3년이 걸린다”며 “정보보호 수준도 점점 높아져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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