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주변에는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를 거쳐 오며 밀집했던 수제화 공장, 자동차 정비소, 인쇄 공장이 지금도 남아 있다. 세월의 때가 묻은 건물을 살린 카페형 갤러리가 하나둘 들어서며 요즘 젊은층에게 ‘힙한’ 동네로 뜨는 곳이기도 하다. 옛 금형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S팩토리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여기서 열리는 ‘2018 서울 상상력발전소-빠른 발, 따라가는 시선’전을 보러 지난 16일 현장을 찾았다. 상상력발전소는 서울문화재단이 5년째 이어가는 기획전으로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기치로 한다. 올해는 성수동에서 개최된 만큼 이 동네에 뿌리내린 산업 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전시장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벤츠 스마트 포투 차량이 이채롭다. 가까이 가 보면 차량 전체가 옅은 주황색 가죽으로 래핑돼 있다. 작가그룹 인사이트씨잉이 성수동 주민 이승구(56)씨와 협업한 작품이다. 30년 경력의 가죽 공예 장인인 이씨는 가죽 조각을 바느질해 이어붙이지 않고도 차량을 통째 싸는 놀라운 재주를 부렸다. 그는 “가죽에 물을 뿌리면 신축성이 생기는 성질을 이용했다. 이런 큰 작업은 처음이라 뿌듯했다”고 말했다. 나흘 만에 작업을 뚝딱 해치우는 걸 본 인사이트씨잉 소속 이정훈 작가는 “이 과제를 누가 제일 잘할 수 있는지 주민들에게 묻고 물어 찾은 분이다. 그런 과정이 협업의 즐거움”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쪽에서는 일반인 10여명이 가죽 슬리퍼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인사이트씨잉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워크숍이다. 영등포에서 온 주부 이종은(47)씨는 “천과 달리 가죽은 사람 피부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전시된 자동차 작품이 어떤 느낌으로 제작됐는지 예술가가 된 기분을 감각해보라는 취지다. 마을 잡지 ‘성수동 뜨다’를 발간하고 있는 원동업(50)씨네 가족도 참여했다.
이처럼 ‘지역성+제작 문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과 함께 ‘동시대 예술+과학기술’을 보여주는 작품도 전시의 또 다른 축이다. 조성현 작가는 한 평으로 구성된 4개 구조물을 세우고 여기에 영상 이미지를 투사했다. 관객은 그 한 평 안에서 영상을 체험할 수 있다. 여인혁 작가는 오픈소스를 활용해 삭막한 도시에 온기를 주는 움직이는 꽃꽂이 화분을 내놨다.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이준걸씨는 “미술은 어렵다는 통념을 깨자는 것이다. 기술자와 예술가의 교류, 시민 참여 워크숍 등을 통해 미술이 삶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