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MC 옆 보조는 옛말…예능 끌고가는 여성 진행자들

여성들이 중심이 돼 이야기를 풀어가는 예능 프로그램들. tvN '주말 사용 설명서'(위 사진), 올리브 '밥블레스유'. 아래쪽 사진은 tvN '알쓸신잡'에 패널로 합류한 김진애 박사. CJ ENM 제공


4명의 여성이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부산, 여행 가이드는 방송인 김숙이다. 이들은 리우데자네이루·홍콩·뉴욕·베네치아를 방불케 하는 이국적인 풍경을 찾아 부산 곳곳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늦은 저녁 숙소 옥상에서 즐기는 ‘파자마 파티’는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이들은 각자의 취향을 살려 파자마를 입고, 부산의 야경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을 걸친다. 그리고 유쾌한 입담을 풀어낸다.

지난 9월 30일 방송을 시작한 tvN 일요일 예능 ‘주말 사용 설명서’다. 주 52시간 시대에 발맞춰, 김숙 라미란 장윤주 이세영 4명의 출연자들이 살면서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할 ‘핫’한 장소와 새로운 놀 거리들을 소개한다. 아직 방송된 건 2회뿐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찰떡 호흡과 신선한 콘텐츠 덕에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프로그램에 신선함을 더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여성 출연자들의 ‘일상’이다. 여성 출연자들의 등장은 그 자체로 지금껏 받지 못했던 느낌을 준다. 남성이 중심이 된 미디어 내 ‘유리천장’ 때문이다. 실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7월 지상파·종편·케이블 채널의 33개 예능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여성 진행자 비율은 36.8%에 그쳤다. 특히 메인 여성 진행자 비율은 26.8%에 불과했다.

최근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여성 방송인들이 주축이 된 예능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종편과 케이블 채널이다. 교양 예능의 판도를 바꾼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은 최근 시즌3를 맞아 배경을 해외 유명 도시들로 바꾸고, 여성인 김진애 MIT 도시계획학 박사를 패널로 투입했다. 지식인 패널들이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됐다는 일각의 의견을 수용해 외연을 넓힌 것이다.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이 진행해온 올리브 채널의 푸드 토크쇼 ‘밥블레스유’도 대표적이다. ‘언니들의 푸드테라픽(PICK)’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 프로그램은 맛깔나는 ‘먹방’과 ‘수다’의 결합으로 호평을 얻으면서 지난 4일 새 시즌을 시작했다. ‘언니들’은 테이블 위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시청자들에게 받은 고민을 듣는다. 그리고 음식으로 고민의 해법을 제시한다. 이 중 이영자와 김숙은 JTBC ‘랜선라이프’에서도 공동 MC를 맡아 활약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바탕에는 대중들의 인식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청자들의 기호에 맞춰 변하는 미디어의 특성상 여성 중심의 방송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대중들의 인식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이런 흐름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여전히 주진행자로 활동하는 여성의 수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고, 프로그램에서 맡는 역할의 차이가 두드러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평론가는 “남성은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여럿 발굴되는 반면 여성은 개그우먼 출신으로 망가지는 역할이 대부분”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진행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다양한 역할을 맡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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