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0년… 채워지지 않는 ‘천생 뮤지션’의 빈자리


 
오는 27일은 가수 신해철이 별세한 지 4주기가 되는 날이다. 신해철은 4년 전 복통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KCA엔터테인먼트 제공


많은 이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예감했다. 얼굴은 곱상한데 풍기는 카리스마가 예사롭지 않았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긴장한 기색 없이 노래도 시원스럽게 잘 불렀다. 경연 참가곡 ‘그대에게’는 박력이 넘치면서 구성도 특이했다. 뇌리에 깊이 박힐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결국 대상 트로피는 이 곡을 부른 밴드 무한궤도에 돌아갔고, 밴드의 리드 싱어이자 노래를 만든 신해철은 음악계 종사자들과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신해철은 이듬해 발표한 무한궤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에서 수록곡 절반을 작사·작곡하며 남다른 음악성을 재차 보여줬다. 그가 지은 곡들의 구조는 대체로 웅장했지만 까다롭지 않은 멜로디를 지녀 음악팬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갔다. 노랫말은 현실적이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타이틀곡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는 젊은 날의 낭만,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담아 또래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후 솔로로, 밴드 넥스트로 활동할 때에도 신해철은 매번 다채로움과 견고함을 동시에 보여줬다. 재즈(‘재즈 카페’), 힙합과 하우스 음악을 혼합한 힙 하우스(‘도시인’), 프로그레시브 메탈(‘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전자음악과 국악과 록의 퓨전(‘Komerican Blues’), 아카펠라(‘아가에게’) 등 대중음악의 여러 양식을 진취적으로, 알차게 소화한 궤적이 선명하다는 사실을 우린 확인할 수 있다.

넥스트 가동을 잠시 중단한 뒤에는 윤상과 노 댄스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크롬이라는 예명을 내세워 전자음악에 집중하기도 했다. 2014년에 낸 솔로 미니음반에서는 1인 아카펠라, 펑크 록, R&B 등 흑인음악을 주로 들려줬다. 다른 이의 곡을 모방하는 꼼수는 부리지 않았다. 늘 주관이 뚜렷했다. 외국 노래를 당당하게 베끼는 행태가 끊이지 않는 가요계에서 신해철은 순결한 창작품을 선보이는, 돋보이는 존재였다.

다수가 한번쯤 할 법한 고민을 다루거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명한 가사도 신해철을 특별한 음악가로 여겨지게끔 했다. 불투명한 앞날, 사회가 정해 놓은 성공의 기준 때문에 불안해하는 청춘들에게 위로를 건넸으며(‘나에게 쓰는 편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는 이들을 격려했다(‘The Dreamer’).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현대 산업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스케치했고(‘도시인’), 물질만능주의의 만연을 비판하기도 했다(‘Money’). 휘발성 강한 연애담을 주된 메뉴로 삼는 보통의 가수와는 많이 달랐다.

그의 노래들은 대중의 보편적 감수성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거울 역할을 했다. 또한 간과하기 쉬운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동시대 젊은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며 지성의 발육을 도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성스러운 연구, 기술적 성장, 철학적 사색을 담보함으로써 감동과 즐거움을 안긴 신해철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부단히 자신을 담금질했으며, 작품을 통해 진중한 물음을 던지는 천생 예술가였기에 그의 부재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크게 느껴진다. 올해로 데뷔 30년, 이 기쁘고 대단한 역사를 기념할 당사자가 없어서 더욱 아쉽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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