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용목] 그의 이름을 앞에 놓고



대개 책이 나오면 인사차 주변 사람들에게 돌리곤 한다. 이사를 가면 새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는 일과 비슷하다. 그간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고, 소원했던 시간을 대신해 일종의 기별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들끼리는 물리적으로 가깝지 않더라도 책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때도 이유는 비슷하다.

선배든 후배든 그로부터 직접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책이나 문장에 빚진 바가 아예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만난 적 없고 특별히 주고받은 사연이 없다 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통해 이미 많은 대화를 나눈 듯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동병상련일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갖는 연민 혹은 연대 같은 것. 말하자면 서로 글 쓰는 일의 고독을 확인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일일 것이다. 책이라는, 아주 두꺼운 명함이자 마음이며 인생을 주고받는 일이 마치 결성한 적 없는 조합에서 행하는 조용한 상조쯤으로 여겨져서 괜히 뭉클했던 적도 있다.

책 안쪽에 상대의 이름을 쓰고 인사를 곁들이는데 간혹 이름이 잘못 쓰인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책이 나에게 온 것이다. 여러 개를 준비하다 보면 내용물이 뒤바뀌는 일도 잦을 것이다. 그러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받아야 할 사람 역시 내 이름이 쓰인 책을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아니면, 거기에는 또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이 쓰여 있어서 이 책을 받은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름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이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구멍이기도 하다. 이름 속을 드나드는 마음처럼 그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서로 뒤섞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그를 만나고 떠올리며, 이름이 대신하여 그가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 내게 보냈다는 우편물이 영영 도착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내 이름이 어떤 미지를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미리 닿아 있는 것은 아닐지, 또 생각하게 된다.

신용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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