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따뜻한 시선, 차가운 시선



북한에 대한 지나친 애정 표현이
한·미관계마저 껄끄럽게 만들고 있어
김정은의 원만한 연말 방한 위해
남북관계 속도 줄이고 남남갈등 해소에 주력해야


미국의 ‘승인(approval)’ 없이 문재인정부가 5·24 조치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은 부적절했다. 아무리 강국이어도, 막말을 일삼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승인’이란 표현은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는 외교적 결례다. 그럼에도 청와대나 정부의 공식 대응은 없다. 문 대통령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국제 제재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원론적 말씀으로 본다”는 게 전부다. 한·미 공조에 균열이 더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이겠지만, ‘5·24 조치 해제 검토’라는 말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볍게 이를 언급했다가 부랴부랴 거둬들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입이 화근이라는 사실이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정부는 잠잠하나, 정치권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갑질’한다는 지적과 함께 강 장관이 자초했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한·미 간 파열음은 이번뿐이 아니다. 남북의 군사분야 합의서 채택을 놓고서도 양국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례적으로 산업은행과 국민은행 등에 대북 제재를 위반하지 않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민감한 때여서 한·미 동맹관계를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엇박자를 내고 있으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 바탕에 문재인정부가 비핵화에 소극적인 북한 쪽에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엄존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데에도 비핵화는 더딘데 북한 편을 드는 듯한 문재인정부의 언행에 대한 불편한 심경과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5·24 조치 해제 검토라는 강 장관 발언은 국정감사장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문답을 통해 나왔다. 그런 탓에 ‘이 대표와 강 장관이 질문과 답변을 미리 조율했을 것이고, 이는 정부·여당이 5·24 조치를 해제하려는 사전 포석일 것’이라는 의구심을 받고 있다. 미국으로선 문재인정부가 대북 제재 전선을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재다. 개성 연락사무소 가동, 남북 철도연결 사업, 북한산 석탄의 한국 밀반입 사건 등도 의구심을 키운 요인들이다.

남북관계 발전은 한반도 평화 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핵 있는 평화’는 안된다. 현재 북한의 비핵화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임기인 2021년 1월까지 비핵화가 완료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으나 가변성이 너무 크다.

이런 상황인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판을 깨지 않으려면 어떡해서든 김정은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겠으나 지나친 면이 있다. 김정은 리더십에 대한 과도한 칭송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이 원하는 것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도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천안함 46명의 용사들과 유족들은 안중에 없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북한 인권 문제는 거의 외면하고 있다.

반면 남북관계의 과속을 우려하는 쪽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시선은 차갑다. 여권에선 한반도에 평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는 만큼 모두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논리만 넘쳐난다. 김정은의 핵 도발 경력이나 ‘북한 인권’은 거의 금기어가 됐다. 그러다보니 신중함을 강조하는 합리적인 온건론자들마저 평화의 훼방꾼으로 폄훼되기 일쑤다. 차분하고 끈질긴 의견수렴 절차 없이 야당을 압박하는 방법으로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이라는 현안을 해결하려 드는 것에서도 대북 시선과는 상반된 냉랭함을 느낄 수 있다.

남북관계 진전과 항구적 평화를 위해선 국민통합이 필수다. 가급적 남남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올 연말쯤 김정은 방한이 예정돼 있다.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100% 환영하는 분위기 마련은 불가능할 것이나 어느 정도 반기는 여건은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문재인정부가 갈등을 부추기는 언행을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내키지 않아도 야당 지도자를 비롯한 보수진영 인사들과 자주 만나 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야당도 무조건적인 반대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집권세력이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에 보내는 따뜻한 애정의 절반이라도 보수진영에 지속적으로 표하면 연말 서울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문 대통령의 ‘운전자’ 역할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 역할이 제대로 결실을 맺으려면 지지자들만으로는, 독주로는 어렵다. 국민통합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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