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카오스홀. 가수 이문세는 그 옛날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할 때처럼 라디오 부스같이 꾸며진 무대에 앉아 새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을 들려줬다. 직접 노래를 불렀다는 건 아니다. 라디오 DJ가 그렇듯 노래에 담긴 사연을 소개한 뒤 수록곡을 하나씩 틀어주었다. 세는나이로 어느덧 예순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반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맑고 부드러웠다.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을 주는 곡도 별로 없었다.
이곳에서 열린 행사는 이문세가 새 음반 발매를 기념해 마련한 음악감상회였다. 이문세는 이날 16집 ‘비트윈 어스(Between Us)’를 발표했다. 3년 6개월 만에 내놓은 정규 음반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조용하게 새 노래를 들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음악이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신보에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힘을 보탰다는 점이었다. 이문세는 까마득한 후배인 래퍼 개코, 밴드 잔나비,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 등과 호흡을 맞췄다.
“음반 제작에 앞서 많은 뮤지션들로부터 200곡을 받았어요. 누가 만든 곡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러니까 아무런 정보 없이 이들 노래를 듣고 100곡을 추렸죠. 그 뒤엔 다시 50곡을 선별했고, 20곡으로 압축한 뒤 최종적으로 음반에 실을 10곡을 골랐어요. 아무런 편견 없이 좋은 음악을 고르고 싶어서 ‘블라인드 초이스(Blind Choice)’를 진행했던 거죠.”
타이틀곡 ‘희미해서’는 가수 헤이즈가 작사·작곡한 노래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앙상블을 이룬 선율 위에 이문세와 헤이즈의 목소리가 차례로 포개지는 구성을 띠고 있다. 한때 가슴을 아프게 만든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 추억이 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곡이다.
김경진 음악평론가는 이 노래에 대해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세련된 발라드”라며 “이문세의 보컬은 완벽하고, 맑은 헤이즈의 목소리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고 평가했다.
팬들은 음반의 세 번째 트랙을 장식한 ‘우리 사이’에서 얼마간 놀라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선우정아가 만든 이 노래는 선우정아 특유의 감성과 펑키한 리듬이 조화를 이룬 곡인데, 이문세의 전작들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문세는 “수록곡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고른 노래”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에는 나랑 안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일하는 직원 중에서 막내가 ‘한 번 다시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음악을 듣는데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 말했다. 음반엔 이들 노래 외에도 이문세가 직접 작곡한 노래도 3곡이나 실려 있다.
1983년 1집을 발표하면서 데뷔한 이문세는 명실상부한 가요계의 거장이다. 35년간 꾸준히 활동하면서 수많은 노래를 히트시켰고, 지금도 대형 콘서트를 열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기까진 작곡가 이영훈(1960∼2008)의 공이 컸다.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문세의 3집이나 4집, 5집의 경우 수록곡 대다수가 이영훈의 곡이었다.
“영훈씨가 살아 계셨다면 (새 음반을 준비하면서) ‘몇 곡 채워달라’고 했을 거예요. 영훈씨처럼 저의 음악을 꿰뚫는 분은 없었으니까요. 영훈씨와 제가 불화를 겪었다는 소문도 있던데 전부 가짜 뉴스예요. 저희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는 부부 관계나 마찬가지였어요.”
이문세는 새 음반 발매를 기념해 콘서트도 열 예정이다. 공연은 ‘2018 이문세 더 베스트’라는 타이틀로 오는 12월 29∼3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