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과학] 진공과 디랙의 바다

양전자를 예견한 폴 디랙과 PET 장비 Wikipedia·Pixabay


지구상에서 진공을 만들려면 밀폐된 용기에 진공 모터를 연결해 내부 공기를 밖으로 빼내야 한다. 현재 기술로는 100조개의 공기 입자 당 하나만을 남겨놓는 정도의 초고진공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태는 거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따르면 진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입자와 반입자가 빼곡히 결합한 상태로 존재한다.

1928년 영국 물리학자 폴 디랙은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전개하면서 전자의 반입자 개념을 도입했다. 반입자는 질량, 스핀 등 다른 물리량은 모두 동일하지만, 전기만 반대 부호를 갖는 입자이다. 전자의 경우 음의 전기를 띠고 있으나, 전자의 반입자는 양의 전기를 띠고 있어 양전자로 불린다. 전자와 양전자가 만나면 강력한 방사선인 감마선을 배출하면서 사라진다. 디랙은 이 현상을 양의 에너지와 음의 에너지 개념으로 설명했다. 양전자는 음의 에너지가 비워진 상태이며, 쌍소멸은 양의 에너지를 갖는 전자가 비어있는 양전자에 결합하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의 질량-에너지 등가법칙(E=mc²)에 따라 전자와 양전자의 질량에너지가 감마선으로 변하며 서로 쌍소멸한다. 즉, 진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입자와 반입자가 빼곡히 결합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진공을 ‘디랙의 바다’라고 한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진공에서 입자와 반입자를 끄집어 낼 수도 있다. 질량에너지보다 큰 감마선이 진공을 지나가면, 결합해 있던 입자와 반입자가 분리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를 ‘쌍생성’이라고 한다.

암을 진단하는 의료장비인 양전자단층촬영(PET)에는 양전자가 활용된다. 환자 몸에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선 의약품을 주입하면 암세포 주변으로 모인다. 이 의약품에서 발생하는 양전자는 암세포의 전자와 쌍소멸하면서 감마선을 배출한다. PET 장비는 이 신호를 감지해 컴퓨터로 3차원 입체 영상을 구현하고 암을 진단한다.

이남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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