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손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슬쩍 넘어갔다 돌아오는 장면,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한 남북 정상 부부의 기념 사진.
각각 지난 4월의 제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9월의 제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명장면이다. 훗날 역사 교과서에 실릴 법한 이 기록 사진이 미술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임옥상(68), 이종구(64), 김준권(62) 등 중견 작가 3명이 약속이나 한 듯 그 명장면을 차용한 신작을 발표했다. 이들은 모두 1980년대 독재정권 하에서 ‘반독재 민주쟁취’의 기치를 내걸었던 민중미술, 즉 리얼리즘 진영의 주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임 작가는 최근 막 내린 창원조각비엔날레에 ‘민들레 꽃씨, 당신’ 연작 3점을 출품했다.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고 넘어오는 사진 이미지는 실루엣으로만 표현했다. 몸체 안은 실제의 민들레 홀씨를 촘촘히 심었고, 배경은 화사한 붉은 톤의 흙을 발랐다. 통일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가 싹을 틔웠으면 하는 바람이 즉각적으로 느껴진다.
이 작가도 같은 장면을 ‘봄이 왔다’ 연작의 도상으로 가져왔다. 지난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가졌던 개인전 ‘광장_봄이 오다’전에 선보였다. 사진을 가지고 세밀히 그리는 방식을 취해온 작가는 이번에도 같은 방식을 썼는데, 4월 정상회담이 열리던 무렵 피었던 철쭉을 추가해 배경에 깔기도 했다. 또 백두산 천지와 제주도 유채꽃을 추가한 작품은 마치 9월 정상회담 마지막 날 두 정상이 백두산을 등반하고 천지 주변을 산책하는 모습을 담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최근 기자와 만나 “9월 정상회담이 열리기 훨씬 전에 그린 작품이다. 두 정상의 백두산 천지 산책이 현실화되고 보니 희망이 팩트가 돼 기록화처럼 돼버렸다”며 웃었다.
김 작가는 전시를 통해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부부의 백두산 천지 기념사진을 끌어온 다색판화를 최근 제작했다. 판문점 정상회담 때 그의 대형 목판화 ‘산운’이 회담장 로비에 걸려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작품에는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함께 손을 치켜든 두 정상 뒤로 ‘대동여지도’가 형상화돼 있다. 대동여지도는 우리 측에서 북에 가져간 선물이기도 하다.
이들의 작품을 두고 기록사진도 있는데 굳이 왜 그걸 그대로 가져와 작품화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은유가 아닌 직역의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에 대해 임 작가는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등신대로 키워 기록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또 “민들레 홀씨와 흙이 갖는 함의를 버무림으로써 사실적 기록과는 다른 예술적 상상의 차원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도 “사진은 너무나 자명해 서사의 깊은 속내를 다 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가 5000년을 같이 살았고, 겨우 70년 분리돼 있었다는 문 대통령의 연설이 준 감동을 어떻게 사진이 다 말할 수 있겠느냐. 대동여지도는 기록사진의 너머를 이야기 한다”고 설명했다.
미술비평가 김노암씨는 “이른바 민중미술 작가는 예술의 사회적 참여를 미학적 입장으로 견지해온 이들”이라며 “이번 작업은 일종의 역사화·민족기록화로,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가 고민할 주제를 선택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평했다. 이어 “그들이 민중과 소통하기 쉬운 방식으로 채택하는 것이 재현이며 이는 이들의 미술이 쉽게 다가오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