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바그너의 대서사시 ‘니벨룽의 반지-라인의 황금’이 오는 14∼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니벨룽의 반지’가 한국에서 제작돼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총연출은 독일 오페라의 거장 아힘 프라이어(84)가 맡았다. 올해부터 3년간 ‘발퀴레(2019)’ ‘지그프리트(2019)’ ‘신들의 황혼(2020)’ 4편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는데 총 1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이 거대 프로젝트 중심엔 에스더 리(53·한국명 이영경) 월드아트오페라 단장이 있다. 월드아트오페라는 이번 공연을 주최하는 국내 공연제작사다. 프라이어 총연출의 아내이기도 한 리 단장을 지난 1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중구의 한 호텔과 공연 연습장소인 서울 광진구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오가며 진행됐다.
북한 성악가 초청 아쉽게 무산
월드아트오페라는 이번 무대에 북한 성악가를 섭외하려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리 단장은 “독일을 거쳐 북한 성악가를 초청하려 했으나 북한 건국 70주년 행사에 동원돼 참여가 어렵다고 들었다”며 “3년간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다음 공연인 ‘발퀴리’ 때는 합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 본 극장에서 열리는 2020년 마지막 공연에선 남북한과 독일 성악가가 함께 무대에 오른 공연을 보는 게 꿈”이라 힘주어 말했다.
그가 무대에 북한 예술가를 올리려는 이유는 남편 프라이어 총연출의 경력과 무관치 않다. 프라이어 총연출은 지금껏 4가지 형태의 정부를 거쳤다. 히틀러 집권 시기 태어나 동독의 동베를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위해 이탈리아로 갔다가 서독으로 망명했다. 지금까지 오페라와 연극 150편 이상을 연출했다.
그의 ‘니벨룽의 반지’ 연출은 미국(2010)과 독일(2013)에 이어 한국이 3번째다. 한국 공연에선 한반도 상황을 반영했다. 이날 연습에서도 성악가들이 로켓 모양의 풍선을 들고 연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지칭한 것을 반영한 것이다. 리 단장은 “남편은 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그래서 한반도 상황을 감안해 ‘전쟁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스더’란 이름, 하나님 기억하게 해
서울 태생의 리 단장은 베를린국립음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수석 졸업한 재독성악가다. 소프라노로 마리아 칼라스 국제성악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으며 베를린 도이치오페라극장의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2011년엔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의 조연출도 맡았다.
모태신앙인 그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성악가로서의 꿈도 키워나갔다. 어릴 때 별세한 아버지에 이어 91년 어머니까지 병으로 돌아가신 뒤 92년 독일 유학을 떠났다. 고된 유학 생활 동안 안식처는 교회뿐이었다. 매일 오전 새벽예배를 다니며 기도에 전념했다.
에스더란 이름은 이 무렵 새벽예배 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지은 것이다. 그는 “에스더는 겸손의 상징이다. 고아였고 하나님만 바라봤으며 다른 지원 없이 주어진 것만으로 치장해 왕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학은 부모가 지원해도 힘든데 나는 어머니를 잃고 1년 만에 유학길에 올랐다. 기도 중 에스더란 이름을 받으면서 유학 생활이 쉽진 않겠지만 항상 주님이 동행해 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또 “지금도 사람들이 에스더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아직 하나님 안에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국 오페라 저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 한다. 리 단장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국내 오페라가 부흥해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에 힘을 보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