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가 찰리 채플린은 이 말로 우리네 인생을 간명히 표현해냈다. 답답한 일상에 짓눌려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달관하고,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주는 말이다.
이 문장을 120분 길이로 꼭 맞게 옮겨놓은 영국 웨스트엔드의 슬랩스틱 연극이 한국 무대에 올랐다. 냉소적으로 보려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The Play That Goes Wrong)’이다. 찰리 채플린의 작품을 닮은 이 연극은 지난 2일부터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 초연으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연극은 ‘뭔가 점점 잘못돼간다’는 제목처럼 불가피한 문제들로 인해 연극을 망쳐가는 배우들의 모습을 극중극 형태로 담은 독특한 작품이다. 극 안의 극이 엉망진창이 될수록, 극 밖에서 극을 보는 관객들은 유쾌해지는 전복적 효과를 노린다.
등장인물은 콘리대학의 드라마 연구회 단원들이다. 이들은 미스터리 치정극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을 선보인다. 눈보라가 치는 밤, 자택에서 찰스 해버샴(선재)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카터(손종기) 경감은 단서를 조합해가며 집 안 인물들을 향한 수사망을 좁혀간다.
평온하게 시작한 연극은 곧 난장판이 된다. 문은 열리지 않고, 벽에서는 액자와 장식이 계속해서 떨어진다. 당황해 대사가 엉키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급기야 기절하는 배우도 생긴다. 이 재난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 그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는 관객들은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다.
2012년 런던에 있는 한 펍에서 첫 공연을 올렸을 때, 관객 수는 단 4명이었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며 2014년 웨스트엔드로 진출했다. 현재는 독일 일본 남아공 등 37개국에 수출됐고, 200만명 이상이 관람한 ‘핫’한 작품이 됐다. 올리비에 어워즈(2015)와 토니상(2017) 등을 받으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연극은 여러 방법을 동원해 관객들의 시선을 무대에 묶어놓는다. 먼저 눈을 사로잡는 건 기발한 무대 연출과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결합해 만드는 리듬감이다.
원작 무대 그대로를 재현한 이번 공연에서 선반 시계 무대바닥 등 세트와 소품들은 모두 떨어지고, 뒤집히고, 무너진다. 배우들은 이들과 사랑을 하는 것처럼 몸을 늘이고, 눕히고, 매달리며 한 몸처럼 어우러진다. 관객들은 다음 난장을 기대하는 한편 무대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허접함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감추는 배우 11명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일품이다.
몰입감을 더하기 위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흩뜨려 놓는다. 연극은 시작 전부터 떨어진 선반을 수리하는 드라마 연구회 단원들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한다. 극에 출연하는 강아지 윈스턴을 찾기 위해 무대 밖을 돌아다니거나 인쇄물을 돌린다.
심지어 무대감독 트레버(고동옥)는 2층 객석에서 연극 디렉팅을 하는데, 이는 마치 관객들이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을 보러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다만 쉴 새 없이 터지는 재난에 극중극의 내용까지 함께 따라가기는 다소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한바탕 웃고 나면 개운함이 느껴지는 연극이다. 비극적 상황에도 다음 한 걸음을 꿋꿋이 내딛는 단원들을 보고 있으면 퀸의 노래가 떠오른다. ‘무대(인생)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세종문화회관과 30주년이 된 신시컴퍼니가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