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보죠.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사랑의 스튜디오’랑 지난해와 올해에 크게 화제가 된 ‘하트시그널’의 차이점은 뭘까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간담회는 2019년 대한민국을 뒤흔들 소비 트렌드를 전망한 신간 ‘트렌드 코리아 2019’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의 스튜디오와 하트시그널은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다른 건 무엇인가. 사랑의 스튜디오는 밀폐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스튜디오 예능’이고 하트시그널은 출연진이 일상에서 교감하는 장면을 담아낸 ‘관찰 예능’이다. 그런데 김 교수가 짚은 포인트는 다른 데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패널이 있다는 거예요. 하트시그널에서는 패널의 활약이 두드러져요. 이들은 출연진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며 미혼 남녀의 심리를 분석합니다. 과거엔 시청자가 직접 출연자의 감정을 해석했지만 이젠 패널이 ‘감정 대리인’을 맡아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어요. 이런 현상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날 겁니다. ‘감정의 외주화’가 이뤄지는 거죠.”
실제로 최근 방송가에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인 ‘관찰 예능’에서는 패널의 활약이 대단하다. 스튜디오에 앉은 패널들은 출연진의 영상을 보면서 감상을 늘어놓고 해석을 덧붙이곤 한다.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시점’(이상 MBC) ‘미운우리새끼’ ‘동상이몽’(이상 SBS) ‘아내의 맛’ ‘연애의 맛’(이상 TV조선) 등 요즘 인기 있는 관찰 예능 대다수가 그렇다. 패널의 비중이 막강한 만큼 일각에선 이들 프로그램을 ‘액자형 관찰예능’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구성을 통해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콘텐츠는 미운우리새끼를 꼽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20%를 넘나들면서 최고의 인기 예능으로 자리매김했는데, 가장 주효했던 건 패널의 활약이었다. 스튜디오에 둘러앉은 어머니들은 철없이 행동하는 자식들의 영상을 보며 역정을 내거나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안방에서 TV를 보는 중장년 시청자가 느끼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어머니들은 지난해 연말 열린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교수가 언급했던 하트시그널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6∼9월, 올해 3∼6월 각각 시즌제 형태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 ‘예측자’로 명명된 패널들은 일반인 미혼 남녀들이 동고동락하면서 교감하는 영상을 보며 출연진의 심리를 분석했다. 출연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삼각관계를 연구했고, 누가 커플이 될 것인지 예측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을 짚어내는, 시청자의 ‘감정 대리인’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포멧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미운우리새끼가 크게 성공하면서 ‘관찰 예능+패널’의 형태가 방송가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관찰 예능은 출연자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르”라며 “패널들이 이런 콘텐츠에서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되새기게 해주고 있는 만큼 이들의 활약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