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한국 오페라 새로운 비전 ‘니벨룽의 반지’가 알렸다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 중 제1부 ‘라인의 황금’의 공연 장면. 독일의 표현주의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는 이 오페라에 한국의 분단 상황을 반영했고 한국 성악가들을 무대에 많이 세웠다. 월드아트오페라 제공


지난주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 전체 4부 중 제1부 ‘라인의 황금’의 막이 올랐다(14∼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브레히트의 직계 제자이자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표현주의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직접 연출을 맡는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바그너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국내 현실 때문에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다.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관객들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무대 디자인이었다. 추상화가 잭슨 폴록을 연상시키는 프라이어의 그림이 그래픽으로 처리돼 무대 뒤는 물론 전면에 내려온 투명막에 동시에 투영되면서 다차원적 입체감이 강조됐다. 무대 양옆 거울은 실제 규모보다 확장돼 보이는 착시효과를 일으켰다.

원색적인 색감과 특정 신체 부위의 유치한 과장을 통해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는 프라이어 특유의 표현은 변함없었다. 지혜의 샘물을 마신 대가로 한쪽 눈을 잃은 신들의 수장 보탄의 가슴팍에는 외눈이 과장되게 박혀 있었고, 보탄의 허영심 많은 아내 프리카는 유달리 길쭉한 양팔을 달고 있었다. 알베리히를 비롯한 니벨룽족들은 커다랗고 못생긴 인형 탈을 쓰고 있어 신족보다 왜소하고 열등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이 프로덕션이 한국에서 초연되어야 하는 당위성 또한 무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프라이어는 이전 인터뷰에서 “‘니벨룽의 반지’에 한국의 분단 상황을 반영해 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실제로 이번 ‘라인의 황금’에서는 지하 세계의 니벨룽족을 고립된 독재국가 북한으로, 그들에게서 황금과 반지를 앗아가는 보탄과 신족을 자본주의 국가로 해석한 메타포가 자주 등장했다. 가령 원작에서 알베리히가 보탄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변신하는 큰 뱀이 여기서는 미사일로 표현됐다. 한국에 대한 프라이어의 관심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그는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연(2007)을 연출했고 외국인 최초로 수궁가(2011)를 연출해 국립극장에서 선보였다. 이러한 세계적 거장의 관심이 제작비 협찬은 물론 국제적인 바그네리안 성악가를 서울로 끌어들이는 견인차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은 2005년 마린스키 프로덕션이다. 당시와 이번 무대의 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한국 성악가들의 약진이다. 무대부터 출연진까지 모두 ‘수입’에 의존했던 2005년과 달리 이번 공연은 한국인 성악가들이 무대를 이끌었다. 바이로이트 성악가 전승현 김동섭 양준모 등이 포진한 A팀은 물론, B팀은 아예 대부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한국인 성악가만으로 구성됐다. 이는 후진 양성까지 내다본 노 연출가의 혜안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좌석점유율은 80%를 넘겼고, 객석을 채운 젊은 관객층은 한국 오페라의 밝은 비전을 보여줬다.

이 현상이 얼마나 진기한 것인지는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한국 오페라사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는 1948년 서울 명동 시공관 무대에 오른 ‘라 트라비아타’였지만, 바그너 오페라 초연은 그로부터 26년 뒤인 74년에야 성사됐다(‘방황하는 네덜란드인’). 80년대와 90년대에는 아예 바그너 작품이 단 한 번도 상연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치우친 한국 오페라계는 바그너의 극적 지시를 소화할 수 있는 성악가는 물론 극장을 마련할 엄두조차 못 내며, 그렇게 20세기를 보냈다. 그런 황무지였던 곳에서, 한국인 성악가와 한국 청중들이 가득 찬 가운데 한국 상황을 소재로 한 바그너 음악극이 펼쳐졌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회의감을 가지고 내다보는 남은 3편의 시리즈가 무사히 완성된다면, 이건 분명 한국 오페라 역사에 남을 일이다.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