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쳐보니까 사람들 아픈 걸 알겠어. 2년 입원해 있으면서 무슨 드라마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난 2일 방영한 KBS 2TV 단막극 ‘엄마의 세 번째 결혼’으로 30여년 PD 인생을 마무리한 김영진(58) 감독에게 드라마는 ‘위로’였다. 최수종과 채시라 등이 출연하며 시청률 50%를 훌쩍 넘긴 ‘야망의 전설’(1998·KBS2)을 연출해 한국 드라마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그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KBS 별관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 감독은 “30년을 했는데도 현장에서는 꼬이기 일쑤다. 그래도 표현하고자 한 걸 시청자가 느껴줄 때 엄청난 짜릿함이 있다”며 웃어 보였다.
김 감독은 고등학교 때 학교에 온 방송국 PD를 보고 삼수 끝에 연출자가 됐다.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즐겁게 일했다. ‘야망의 전설’에 이어 ‘사랑하세요?’(1999)까지 연달아 흥행시키며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는 2000년 미국에서 가족여행을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척추를 다쳐 왼쪽 하반신이 마비됐다.
‘슬프고, 억울하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2년 후 복직했지만 현장을 떠나 행정업무를 맡아야 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준 건 신앙이었다.
“턱없이 작은 날개를 가진 땅벌이 날 수 있는 이유가 ‘사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아는 목사님이 말하더라고요. 닭은 날 수 있을 만큼 날개가 큰데 미리 포기하니까 못 나는 것이고요. 어떤 상황이든 사명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단막극은 김 감독의 갈증을 풀어주는 작지만 소중한 통로였다. “사고로 넓은 시선을 갖게 됐다”는 그는 이후 ‘고마워 웃게 해줘서’(2010), ‘모퉁이’(2012) 등을 연출했다. 그리고 장애인, 치매 노인, 왕따 청소년 같은 여러 사회적 약자를 향해 자신만의 ‘위로’를 전했다.
김 감독은 “단막극이 점차 사라져가는 게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후배 PD들을 생각하는 마음과도 닿아 있었다.
“단막극은 육상선수로 치면 체력을 길러주는 기본 훈련 같은 거예요. 시청자는 사회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고, 신인 연출자들은 여러 경험을 하면서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지금을 즐기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청소년교육학을 공부 중인 김 감독은 “은퇴 후엔 방송계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복지관을 세우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고 연출자로서의 사명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어느 장소에 가면 어떤 세트로 쓸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요. 천국에 가도 갈등하고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나중에 그 사람들 데리고 드라마 한번 만들어보려고요(웃음).”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