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 함께 본다, 중장년도 청년도 열광

밴드 퀸의 음악 세계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영화는 1985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실감나게 재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도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지난 18일 찾은 이곳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어롱(singalong) 버전을 상영하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CGV.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 밴드 퀸의 결성 과정과 전성기를 다룬 작품인데, 싱어롱 버전을 관람하면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자막에 나오는 노랫말을 따라 부르며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극장을 찾기 전만 하더라도 관객들의 ‘떼창’을 기대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차분하게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관 분위기가 얼마간 바뀌기 시작한 건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시작하면서였다. 일부 관객들은 작은 목소리로 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영화를 즐겼다.

영화관에서 만난 직장인 한모(41)씨는 “이틀 전에 예매를 하려고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티켓이 거의 다 팔려 빈자리가 두 자리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보는 내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며 “퀸의 음악을 다시 찾아듣게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요즘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19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개봉한 이 영화의 누적 관객은 310만여명에 달한다.

과거 국내에서 사랑을 받은 음악영화들과 비교하면 이 영화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예컨대 ‘라라랜드’(2016)나 ‘비긴어게인’(2014)은 3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데 각각 46일, 50일이 걸렸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는 19일 만에 ‘300만 고지’에 올라섰다.

특정 뮤지션의 삶을 다룬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가 남긴 명곡들이 재조명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지난 8월 미국 팝스타 휘트니 휴스턴(1985∼2012)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휘트니’가 개봉하면서 고인의 음악이 주목받는 현상이 벌어졌었다.

특이한 건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그 수준이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다는 데 있다. 일각에서는 영화가 퀸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하지만 20대 관객 중에도 영화 관람을 계기로 퀸의 음악에 매료됐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이 집계한 11월 2주차(5∼11일) 해외종합 차트를 보면 퀸의 음악은 보헤미안 랩소디(8위)를 필두로 총 6곡이나 100위권에 랭크됐다. 해외에서도 퀸은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미국 빌보드가 지난 13일 발표한 최신 차트를 보면 영화 OST 음반은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3위를 차지했고, 퀸은 뮤지션 인기 차트라고 할 수 있는 ‘아티스트 100’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퀸이 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다.

퀸의 노래가 다시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만듦새가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밴드의 음악이 갖는 매력도 무시하긴 힘들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퀸은 평단의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디스코 펑크 재즈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면서 관객과 함께하는 음악,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퀸의 음악은 승자가 아닌 패자를 위한 음악이었다. 영화가 퀸의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잠재된 어떤 지점을 건드린 것 같다”면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전문가들과 달리 일반인들 중엔 70, 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퀸을 꼽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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