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참 잘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경단녀’에 여섯 살 난 쌍둥이의 엄마, 국정원 요원 뺨치는 첩보 능력까지. 어딘가 한 번쯤 걸릴 법도 한데 매끄럽게 흘러간다.
지난 15일 10.5%(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화제 속에 종영한 ‘내 뒤에 테리우스’(MBC)에서 고애린 역을 소화한 배우 정인선(27·사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인선은 “이토록 매일이 과제였던 작품은 없었다. 좋게 봐주셔서 말로 다 못할 정도로 감사하다”며 밝게 웃었다.
“줄거리마다 보여드려야 하는 고애린의 모습이 많이 달랐어요. 경력단절의 아픔이 있지만, 간질간질한 로맨스 톤을 유지하면서 유쾌한 모습도 연기해야 했죠. 방송 직전까지 너무 긴장돼 울다가 촬영장에 가는 걸 반복했던 것 같아요(웃음).”
“‘정인선 아닌 고애린은 상상이 안 간다’는 댓글이 가장 행복했다”는 그의 말처럼 정인선은 첩보물의 무거움과 육아의 코믹함 사이를 오가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의 호연에 힘입어 ‘내 뒤에 테리우스’는 올해 방송된 MBC 평일드라마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정인선은 상대역인 소지섭에게 공을 돌렸다.
“처음엔 부담도 많이 됐었는데 소지섭 오빠에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담백하신 분인 줄만 알았는데 유머러스하시고, 세심한 배려심까지 가지셨어요. 수중신을 촬영할 때는 끝까지 남아 코치를 해주실 정도로요.”
정인선의 섬세한 연기는 전작인 ‘으라차차 와이키키’(2018)까지 30개에 가까운 작품을 거치며 다져온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그는 “계속 ‘폭풍 성장’이라는 꼬리표에 멈춰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성인 연기자에 안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당신’(1996)으로 5세 때 데뷔한 정인선은 당시 초등학생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매직키드 마수리’(2002)의 주인공을 맡아 얼굴을 알렸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마지막 장면에서 박두만(송강호)에게 질문을 던지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꼬마도 정인선이다. 이후 드라마 ‘빠스껫 볼’(2013), 영화 ‘한공주’(2014) 등을 통해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너무 어렸을 때 연기를 시작하다 보니 연기와 생활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게 어려웠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연기의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주체성을 갖기 위해 사진이나 여행 같은 취미를 만든 것도 그때쯤이에요. 제 관점대로 찍을 수 있고, 저를 돌아볼 수 있잖아요. 중심을 잡고 보니 결국 연기가 하고 싶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정인선은 “한계에 갇히지 않고 어러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있는 배우였다.
“고애린은 전작에서 맡았던 캐릭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어요. 제가 가진 유쾌한 기운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도 그런 에너지를 가진 인물로 찾아뵙고 싶어요. 로맨틱코미디도 좋고요(웃음).”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