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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오, 칸의 남자가 되기까지… “아티스트란 고집으로” [인터뷰]

영화 ‘레토’에서 한국계 러시아 뮤지션 빅토르 최를 연기한 배우 유태오. 그는 “빅토르 최는 자유와 변화의 상징이지만, 저는 그의 가사들에서 이방인으로서의 감수성을 느꼈다. 공허함이나 외로움 같은 멜랑꼴리한 느낌을 캐릭터에 녹이고자 했다”고 전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태오가 주연한 영화 ‘레토’의 한 장면. 영화는 빅토르 최의 삶을 통해 꿈꾸는 청춘의 찬란함을 이야기한다. 엣나인필름 제공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지난 4월 13일. 칸영화제에 초청됐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멍했어요. 내가 그런 자리에 가게 되다니, 어깨가 무거워졌죠.”

첫 주연작으로 무려 칸 레드카펫을 밟은 사나이, 배우 유태오(37·사진)는 그때의 감동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해외 영화가 칸영화제에 간 건 처음이기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주연한 러시아 영화 ‘레토’(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내년 1월 3일 개봉)는 지난 5월 열린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옛 소련의 전설적인 록가수 빅토르 최(1962~1990)의 이야기다.

‘레토’에 합류하게 된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 지인에게 우연히 캐스팅 진행 소식을 듣고 연기 영상을 찍어 보냈다. 일주일 뒤쯤 모스크바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그 길로 러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결과는 합격.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배역을 꿰찬 것이다.

언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러시아어를 아예 할 줄 몰라 더빙을 활용하기로 했는데, 자연스러운 입모양을 표현하기 위해선 대사와 극 중 부르는 9곡의 가사를 통으로 외워야 했다. 촬영까지 주어진 시간은 3주. 완전히 입에 붙도록 잠자는 순간까지 녹음된 음성을 들었다.

그는 “낯선 언어로 감정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촬영하면서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현지 관객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 이상의 좋은 평가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유태오는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빅토르 최와 동질감을 느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운동선수를 꿈꿨으나, 체대 입시를 앞두고 문득 ‘직업과 관련 없는 경험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미국 연기학교에 들어갔다가 인생이 달라졌다.

배우로 살자 결심한 뒤엔 고국인 한국행을 택했다. 정체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릴 적 방학 때 한국에 와서 ‘접속’ ‘약속’ ‘편지’ 같은 영화들을 봤는데, 그 감수성이 너무 좋았어요. 분명 통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 산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이젠 한국말도 꽤 능숙해졌다. 영화 ‘여배우들’ ‘러브픽션’ 등에 조·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레토’ 전에는 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힘든 순간도 많았으나 흔들리지 않은 건 “나 스스로 아티스트라 생각하는 무식한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포인 제가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배우는 자신의 언어로, 자기만의 소리를 자유롭게 내는 게 중요하거든요. 자신감을 갖고 내 방식대로 표현해나가다 보면 저만의 매력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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