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연예인이 된 느낌이에요. 오랫동안 엄마로 살다가 안 하던 헤어·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려니 영 어색하네요(웃음).”
무려 8년 만의 스크린 복귀다. 배우 유호정(50)의 마음을 흔든 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아련함과 포근함이었다. “이런 작품을 기다렸어요.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이 작품을 하면 나부터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에 선뜻 하겠다고 했어요.”
유호정은 오는 16일 개봉하는 ‘그대 이름은 장미’에서 어린 나이에 홀로 딸을 낳아 악착같이 벌어 먹이고 입혀 길러내는 싱글맘 홍장미를 연기했다. 영화는 꿈 많은 가수지망생인 소녀시절의 장미(하연수)와 팍팍한 현실에 치인 엄마 장미(유호정)의 모습을 교차하며 그의 굴곡진 일생을 펼쳐나간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꿈도 사랑도 접고 자식만을 위해 인생을 바친 우리네 어머니의 이야기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유호정은 “촬영 내내 15년 전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제게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같은 영화”라고 말했다.
“꿈과 사랑에 열정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장미와 달리, 엄마가 된 장미에게는 나 혼자서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처절함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감정이 우울하게 그려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연기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유호정은 극에 적잖이 공감했다. 가장 뇌리에 남는 건 반지하 집에 홍수가 나는 장면. 그는 “중학교 때 집이 물에 잠긴 적이 있다. 엄마가 여동생과 나를 건너편 아파트로 피신시키고 혼자 가재도구를 챙기셨는데,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참 아팠다”고 회상했다.
“촬영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이렇게 감정이 앞서면 안 되는데, 싶어 참아보려 했지만 너무 힘들더라고요. 특히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시켜주겠다’는 딸 현아(채수빈)의 대사가 그렇게 가슴을 찔렀어요. 그 한마디로 내 인생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유호정은 “자극적 소재의 작품과 따뜻한 감성의 작품이 주어지면 난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한다”며 “납치당하거나 성폭력 피해를 입은 딸을 둔 엄마 역할이 많이 들어왔었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 배우로서는 그 또한 해내야겠지만, 몇 개월간 그런 감정에 빠져있을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유호정이 직전에 출연한 영화는 복고 열풍을 일으킨 ‘써니’(2011)였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저희 큰 아들이 열여덟, 작은 딸이 열다섯이에요. 곧 성인이 될 텐데, 아이들이 품을 떠나기 전에 엄마로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그는 “드라마 한 편 들어가 4~6개월 일하고 나면 아이들 생활습관이 달라져 있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것”이라며 “아이들 기억 속에 ‘우리가 자랄 때 엄마와 이런 시간을 함께했었지’ 하는 것들을 많이 남기고 싶다. 세끼 따뜻한 집밥을 해주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다”라고 했다.
연기를 향한 애정은 여전하다. “현장에 있을 때 온전히 즐겁고 행복해요. 앞으로는 더 편안하게 내려놓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이 생기면 언제든 해야죠.” 남편 이재룡(55)이 큰 버팀목이다. “제가 일할 때 남편이 쉬면서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거든요. 전 그래서 배우끼리 결혼하는 거 적극 추천해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