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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전정희] ‘유언비어에 속지는 말되’




‘최근 경성부 내에서는 문둥병환자가 아이를 잡아 가는 것을 통행인이 발견하고 빼앗아 아이는 무사하게 되얏다 하며 혹은 아이를 시루에 찌고 잇는 것을 발견하얏다는 등 유언비어가 횡행하야 일반주민들은 문자 그대로 전전긍긍 중인데….’

1936년 6월 16일자 매일신보는 ‘지나친 공포는 일종 낭설에 불과 유언비어에 속지는말되 유아들은 단속하라’는 보도를 했다. 이른바 장안을 발칵 뒤집은 ‘문둥이(한센씨병) 소동’이다. 이 신문은 이날 두 사례를 들었다. 첫째는 경성부 옥인동 순화병원 앞에서 자기 자식을 놓친 문둥병환자가 지나가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착각해 업으려 했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 수십 명의 시민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사례다.

또 하나는 동대문 전차길 옆 청계천 둑에서 피 묻은 옷을 입고 졸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 한 걸인의 이야기다. 이 걸인은 아이를 잡아먹은 문둥이라고 오인을 받았고 삽시간에 몰려 든 수백 명에게 난타를 당했다. 경성부 순사들이 군중을 해산시키고서야 소동은 끝났다. 선교사들도 아이를 잡아 솥에 넣고 삶아 먹는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시대였다. 의료선교사 포사이드는 동료 선교사 오웬이 급성폐렴으로 사경을 헤맨다는 전보를 받고 목포에서 광주로 향하던 중 길가에 짐승 몰골로 죽어가는 문둥병 여인을 부둥켜안아 살리던 때였다. 결국 오웬은 죽고 말았다.

유언비어에 휘둘리는 군중은 위험하다. ‘군중심리’라는 말에는 통치자의 공포가 담겨 있다. 근대사회 군중은 농촌공동체를 이탈해 도시로 유입된 익명의 사람들이었다. 이 근대의 군중은 무명 때문에 책임감이 결여됐고, 선동되기 쉬웠다. 파리 코뮌에서도 그러했다.

문제는 그 군중의 힘을 조직하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군중을 선동해 권력의 헤게모니를 쥐려 하고 그 과정에서 약자, 소수자 등을 군중의 제물로 만든다. 한데 정보가 넘쳐나는 이 디지털 시대에도 조직하려는 자들에게 휘둘리는 군중이 있다. 조직자들은 가짜뉴스를 조작해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불멸의 뉴스’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불멸을 위한 진실’ 조작자는 광인이며 그 광기는 본질적으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설 연휴를 앞두고 있다. 정치인들은 귀향 민심이 궁금할 것이다. 팩트는 우리 모두의 이성적 제어의 결과다. ‘우리 모두’야말로 참된 군중이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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