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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초점주의



심리학에 초점주의라는 개념이 있다. ‘주의’라는 말이 붙어서 어려운 용어 같지만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느끼기도, 겪기도 하는 일이다. 초점이 되는 요소나 사건, 현상에 과도하게 집중해 다른 사건이나 현상을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처럼 부분에 집착하면 전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무슨 결정을 하거나, 한 번 내뱉은 말에 대해 나중에 자주 후회하곤 한다. 아, 그때 한 발짝 떨어져 차분히 살펴보고 판단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상황을 한두 가지 요인만을 고려해 판단한다면 그 결론은 편향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그렇게 될 게다. 의사결정 뒤에 따를 다양한 상황들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시선을 끄는 요소나 당장 영향을 줄 단기적 변수만 생각하고 결정한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험악한 댓글 달지 말고 아세안에서 기회를 찾으라” “해피조선을 느낄 것”이란 표현은 아무리 봐도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할 소리는 아니다. 말한 당사자나 신남방정책 강조 과정에서 나온 발언으로 안타깝게 여긴다고 밝힌 대통령이나 그저 내세운 정책만 생각했지, 이를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까 하는 전체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면 전체를 볼 능력이 없는 건가. 점심 먹고 저녁 먹을 때까지의 시간 동안 밥 안 먹는 걸 ‘릴레이 단식’이라고 동네방네 떠드는 건 지나가던 소도 웃다가 어이없어 할 일이다.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 이렇게 결정하고 판단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일단 지르기만 하면 우리 편은 모인다고 생각한 건가.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를 끝내 걷어찬 민노총은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전체를 보지 못하거나, 잘못된 줄 알면서도 애써 전체를 보지 않는 의도적인 초점주의 아닌가. 대놓고 숲(공익성)은 안 보고 나무(기득권)만 보겠다는 것이다.

정치나 사회나 온갖 분야에서, 위나 아래나, 의도적이든 무능력해서 그렇든, 조그만 회사에서든 거대한 정치판에서든, 이 사회에서 초점주의가 횡행하는 것 같다. 그러면 많은 결정과 의견 표명들이 단견이나 독단이 되고 반대 의견은 무시된다. 이럴 땐 나무와 숲 전체를 볼 줄 아는 원로들이나 현인들이 좀 나서줘야 하는데, 이미 굳어진 양 극단의 기득권들이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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