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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노숙자담요



5·18 망언 사태를 촉발한 지만원씨는 “2003년부터 2014년까지의 문헌연구와 2015년 이후 영상분석을 통해 5·18 광주에 북한군 600여명이 왔었음을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누가 왔는지도 알아냈다며 628명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대부분 현재 북한 고위직에 있거나 탈북자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문헌연구는 자신이 주도했고 남파 북한군을 찾는 영상분석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았다는데 그 시작은 일베(일간베스트) 게시판이었다. 2015년 5월 3일 한 네티즌이 “5·18 사진 속 인물과 2010년 평양노동자회관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이 똑같아 보인다”는 글을 올렸다. 이를 본 지씨가 “영상분석 전문가를 찾는다”고 블로그에 공지하자 그것을 본 어떤 이가 자청하고 나서서 지금까지 5·18 사진의 얼굴들과 닮은 북한 사람을 찾아온 것이다.

이 사람은 ‘노숙자담요’라는 필명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를 소개하는 지씨의 글을 읽다보면 첩보영화가 떠오른다. “노숙자담요는 전문가들을 이끌고 미국과 중국 정부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수행하는 영상분석팀장이다. 팀은 미국 영국 이스라엘 정보기관에서 일하다 퇴직한 8명으로 구성됐다. 신변보호를 위해 신분은 공개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씨는 노숙자담요를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이라 주장하지만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씨의 배후에서 활동하는 조선족”이라고 추정했다. 아무튼 그가 안면인식 프로그램으로 검증했다는 ‘5·18 북한군’의 면면은 황당하다. 김용순 최룡해 황병서 오극렬 리선권 등 얼굴이 알려진 주요 인사는 대부분 포함됐다. 북·미 회담에 나선 김영철과 최선희도 들어 있고, 귀순한 황장엽과 김덕홍도 있다. 심지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처형인 성혜랑과 여동생 김경희도 광주에 왔었다고 한다. 명단에 포함된 탈북자 김모씨는 1976년생이다. 네 살 때 남파됐다는 얘기가 된다.

가짜뉴스는 예외 없이 출처가 불명한데 북한군 개입설 역시 노숙자담요라는 익명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씨가 가끔 공개했던 노숙자담요의 메일에는 영상분석 작업의 고단함이 적혀 있었다. “수천장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서 누구든지 10명만 찾으려 해도 정신착란 초기 증세가 나타날 겁니다.” 정말 병원에 한번 가봐야 하는 건 아닐까.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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