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전정희] 김구의 심리, 국민의 심리



“옥에 있는 동안 내 심리가 차차 변하는 것을 느꼈다. 지난 10여년간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무엇에나 저를 책망할지언정 남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남의 허물은 어디까지나 용서하는 부드러운 태도가 변하여 일본에 대한 것이면 무엇이나 미워하고 반항하고 파괴하려는 결심이 생긴 것이다.”

1910년 일제의 민족운동가 일망타진 음모에 소위 안악사건으로 체포된 백범 김구 선생이 쓴 글이다. ‘백범일지’에 전후 사정이 기록돼 있다. 일제는 독립자금을 모금하던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명근을 체포했고 김구를 비롯한 황해도와 평안도 민족운동가들을 총독 암살 모의 등의 죄명을 씌워 가뒀다. 서울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배일문화운동 세력도 한데 묶어 신민회사건(105인사건)으로 비화시켰다. 김구도 신민회 일원이었다.

김구는 이때 일제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 5:39)라는 말씀에 회의를 느낀 듯하다. 적어도 일제는 아니라는 확신이었다. “나라가 나를 오늘날까지 먹이고 입힌 것이 왜놈에게 순종하여 붉은 요에 콩밥이나 얻어먹으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한데 같은 감옥 안에서 ‘슬기로운 깜빵생활’을 하는 조선의 무지한 대중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안명근이 감옥에서 굶어 죽기를 결심하고 곡기를 끊자 간수들이 입을 강제로 벌려 넣은 마당에 사기 횡령 강도 절도 살인으로 잡혀 온 죄수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악을 재생산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둑질하던 이야기, 누구를 어떻게 죽이던 이야기를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초면인 사람에게도 거리낌이 없었고 저 혼자만 아는 죄를 뻔뻔스럽게 말하고…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고 했다. 김구는 어머니가 사식을 넣어주면 다른 죄수들과 나누었는데 다음번 사식에서 그 양이 모자라 다른 죄수를 주면 김구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나는 선을 한다는 것이 도리어 악이 되었다”고 후회하며 ‘도덕심의 마비’를 통탄했다.

요즘 작은 악의 집단화가 두렵다. 사기 제대로 치고 한두 해 교도소 생활 후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영웅담처럼 이야기하는 것, 마약 성폭행 폭력 등의 문제가 아무렇지 않게 취급되는 버닝썬 사건의 무감각, 5·18 망언의 섬뜩함…. 사법부는 무얼 하나 싶을 정도다.

김구의 심리 변화가 이해된다. 국민의 심리가 변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온 듯싶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