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심리적 연좌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은 범죄자나 가해자에 준하는 책임을 갖는 것이 마땅한가 아니면 또 하나의 피해자인가. 어렸을 적 사극에서 대역죄인을 처형할 뿐 아니라 삼족을 멸하라는 명령, 그래서 영문을 모르는 자손까지 억울하게 귀양 가거나 목숨을 잃게 되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물론 그런 연좌제에는 연대책임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씨앗을 미리 없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외에도 행위를 한 당사자의 가족도 잠재적인 가해자로 보는 심리적인 연좌제는 우리 문화에 많이 남아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뒤늦게 신규 개인대출의 연대보증 폐지가 추진되었으며, 오히려 인권 문제를 논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와 동등한 특성을 가진 집단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성향이 예전보다 심해지는 경우도 본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부모는 자녀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것은 좀 다르다. 나도 자식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내 잘못 같다. 자녀의 모든 행동에 대해 부모의 양육이 전혀 관련 없지는 않으니 나 역시 부모와 자녀 사이 심리적 연좌제의 틀을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경제나 사회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진료실에서 세상사를 듣는 입장이다 보니 어떤 사건을 접하면 저런 일이 일어날 만한 사회적 구조보다는 개개인의 마음을 먼저 고민해보게 된다. 어떤 사람의 잘못에 대해 가족이나 동업자까지 마음의 짐과 사회적 책임을 지는 연대책임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연대책임은 연좌제와 달리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재발 방지나 개선 등에 동참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으로 취한 부당한 경제적 이득을 어느새 함께 누렸다거나, 알거나 짐작하면서도 덮어주려고 했다면 그 결과도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회적 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가족의 잘못으로 인해 곁에 있는 사람이 얻은 이득은 없고 오히려 마음의 고통을 받거나, 법적인 문제 등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계속 드러내야 하는 사람에게 심리적 연좌제의 돌을 던지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마음의 고통은 타인이 아니라 각자의 의식 안에 있다.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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