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총회장 등 교계 인사들과 잇따라 1대 1 인터뷰를 했다. 새해를 맞아 이들의 신앙 고백을 들어보고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모색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인터뷰이들에게 공통 질문을 하나했다. 2019년은 기독교인이 중심이었던 3·1만세운동이 100년 되는 의미 있는 때니만큼 오늘의 교회가 당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물었다. 100년 전 신앙선배들의 3·1운동을 현재화하기 위한 고민을 듣고자 함이었다.
대답은 의외였다. 이들은 ‘다툼과 분열에서 벗어나 희생함으로써 교회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1 정신에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간구한 것이다. 이승희 예장 합동 총회장은 “희생과 사랑의 피 흘림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고 림형석 예장 통합 총회장은 “희생과 연합정신이 곧 3·1 정신”이라고 대답했다. 장종현 백석대 총장은 “3·1운동은 자기희생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다툼과 분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고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한국교회는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로 봉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위임목사는 “당시 교회는 교파를 초월해 하나가 됨으로써 3·1운동의 주역이 됐다”면서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특히 연합기관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나눠졌던 교단도 하나가 돼 대통합 대화합의 원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교회의 사분오열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교계 리더들이 3·1절 100주년을 맞닥뜨린 상황에서조차 이를 심각하게 거론했다는 것은 해법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이다. 몇 백 개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교단은 찢어지고 교계 여러 기구는 서로 대표성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목회자의 설교가 콘텐츠인 교계 선교방송 역시 ‘그 방송이 그 방송’이라는 지적과 함께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만난 정부 관계자는 “개신교 어느 쪽을 파트너로 해야 될지 곤혹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안별로 교단은 교단대로, 연합기관은 연합기관대로 입장이 다르니 현안을 유의미하게 협의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종교인 과세 제도화가 한창 논의될 때 이를 받아들이는 교계 입장이 이념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어 기획재정부가 곤혹스러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청와대가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할 때 개신교는 모임 성격에 의해 대상자가 바뀐다. 때로는 보수 측 인사가, 어떤 경우에는 진보 목사가 참석한다. 기독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해 교회 이름으로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니 부정적 여파의 위험성은 상존한다. 장로 대통령이라고 환호했던 정부에서도 개신교는 오히려 홀대받았다는 평가가 많다.
내일 오전 서울시청 일대에서는 대규모의 ‘3·1운동 100년 한국교회 기념대회’가 열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교단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제외한 교계 연합기관, 미래목회포럼, 평신도단체협의회, CCC 등 교계 단체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교회가 모처럼 한마음으로 모였다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교계 행사 때면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 참석자들의 감투가 없어 보기 좋다. 대표회장, 대회장, 상임회장, 실무회장, 공동회장, 운영회장, 준비위원장, 행사위원장 등 ‘1인 1감투’식 이벤트성 대회가 아닌 ‘민족과 함께, 교회와 함께’라는 표어처럼 명실상부한 성과를 기대한다.
교계의 영향력 있는 목사들이 3·1절 100주년을 경험하면서 재차 ‘하나됨’을 역설한 것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됨이 반드시 물리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 길은 의인 한 사람이 일거에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와 교회, 교단과 교단, 기관과 기관이 상대를 포용하려는 노력을 구체화하는 자세와 실천이 우선이다. 자신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 교회와 민족을 지켰던 신앙 선각자들 앞에서 이 정도도 못하면 ‘한국교회와 3·1절’은 늘 역사책에서만 확인된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