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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분노가 에너지



졸업식 축사 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꼽겠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2차 세계대전 중 국가 위기의 순간에서 나라를 이끌고 갈 젊은이들을 앞에 앉혀 놓고 행한 이 짧은 축사는 다른 어떤 연설보다 강렬하고 도전적이다. 처칠은 어떤 자리에선 이런 말도 했다. “만일 네가 지옥을 통과하고 있다면, 그대로 계속 가라.” 무슨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라는 뜻이리라. 자유진영의 선두에 서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의 말답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췌장암을 선고받은 그는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시끄러운 타인의 목소리가 여러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 항상 갈망하라. 그리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괴짜 영웅의 생각과 갈망은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을 너무 많이 바꿔 놓았다. 로버트 드 니로의 뉴욕 예술대 졸업식 축사는 한 분야에서 경지에 도달한 이의 여유와 관조마저 느끼게 한다. “졸업생 여러분 드디어 해냈습니다. 그리고 X됐습니다.” 고상한 표현이 아니라 직설과 유머로 졸업 이후 겪을 험한 일들을 예고했다. 단지 예고로 끝낸 게 아니다. “예술인 최고의 주문은 ‘다음에’이다. 배역을 못 얻으면 다음에. … 여러분 행운을 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결국 희망을 얘기한 것인데, 시사주간지 타임 등은 올해(2015) 최고의 축사로 꼽기도 했다. 가슴에 와닿는 축사의 특징은 교과서의 좋은 말, 착한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엊그제 서울대 졸업식에서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축사를 했다. “오늘의 나를 만든 에너지의 근본은 불만과 분노였다. …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달려오는 동안 분노할 일이 참 많았다. … 이런 문제들과 싸워 왔고 그 분노가 나의 소명이 됐다고 느낀다.” 그는 자신이 꿈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변화를 이끌어 왔다고 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직이 최고이고, 워라밸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며, 모두가 상처받았고 그래서 늘 힐링이 필요하다는 이 시대, 그의 말은 가슴 한구석을 깊이 찌른다. 늘 동굴 안에서 그냥 하던 대로만 하지 말고 동굴 밖으로 나가보라는 주문일 게다. 공감한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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