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에 나선 한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이 29일(현지시간) 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해 7명이 숨지고 19명이 실종됐다. 며칠째 내린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물살이 빨랐고, 순식간에 벌어진 추돌 사고로 관광객들이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인명피해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 사고 당시 관광객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5분(한국시간 30일 오전 4시5분) 한국인 33명과 헝가리인 승무원 2명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에서 뒤따라 오던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에 후미를 들이받혔다. 유람선은 1시간가량 야경 투어를 마치고 속도를 줄인 채 귀항하는 길이었다. 헝가리 경찰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크루즈선이 유람선을 들이받자 유람선은 그대로 밀려가다 급류에 휩쓸리듯 약 7초 만에 뒤집혀 침몰했다. 유람선은 새벽 2시쯤 머르기트 다리에서 3m 떨어진 강바닥에서 발견됐다.
유람선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기상상황 탓에 구조 작업도 더뎌 인명 피해가 컸다. 강형식 외교부 해외안전관리기획관은 “현지 공관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관광객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부다페스트에 최근 큰비가 연이어 내려 안전 우려가 있었는데도 여행사가 투어 일정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생존자들은 유람선 출발 전 사고 대처 요령 등을 전달받지 못했고, 사고 후에도 구조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행 상품을 판매한 참좋은여행 관계자는 “당시 강물 수위가 높았으나 모든 유람선이 정상운항하고 있었다”며 “패키지 여행에 기본으로 포함된 일정이었고 전 고객이 참여한다고 해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현지 교민과 유람선 탑승 경험자들은 “안타깝지만 예견된 인재”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1월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야경 관광을 했던 이모(30·여)씨는 “사진을 찍다 휴대전화를 강물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정도의 안내만 있었지 안전사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며 “배가 작고 낡아 바람이 불면 휘청거려 불안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통화를 하고 실종자 구조 및 사망자 수습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했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 정부는 한국 대표단과 협조할 모든 준비가 돼 있다”며 “잠수부와 의료진 200명이 현장에서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으며 물리적 구조뿐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성심껏 돕겠다”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주헝가리 대사관은 사고 발생 55분 뒤 이를 인지해 30일 오전 5시45분(한국시간) 외교부에 구두 보고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외교부로부터 보고를 받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관저에서 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오전 8시쯤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구조활동을 하라”는 첫 긴급 지시를 내리고 오전 11시45분 청와대에서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각 부처 인력을 망라한 신속대응팀을 꾸려 현지에 급파했다. 강 장관도 이날 밤 인천공항에서 주한 헝가리 대사와 면담한 뒤 헝가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부는 침몰한 유람선을 가능한 한 빨리 인양할 수 있도록 헝가리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박상은 기자, 권지혜 박세환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