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받고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이 끝나고 이번 주 한·미, 한·중, 미·중 연쇄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다. 김 위원장의 반응이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셈법 변화 가능성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를 명분 삼아 조심스럽게 협상 복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친서에 훌륭한 내용이 담겨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해온 김 위원장이 ‘훌륭한 내용’ ‘남다른 용기’ 등의 표현을 써가며 만족감을 나타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 해결 전망은 어두울 것”이라며 비핵화 ‘빅딜’ 요구를 일축했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무언가 새로운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맞물려 미국에서 비핵화 실무협상을 주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최근 워싱턴DC에서 열린 애틀랜틱카운슬 기조연설에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유연한 접근’을 제시했다. 또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은 없다”고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그러나 친서의 성격상 비핵화 협상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이 담기지는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덕담을 전하고 북·미 관계 진전 등에 대한 원론적 기대감을 표현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고 두 정상 간에 연락이 계속 진행돼 왔다”고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보낸 시점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협상 교착 국면에서도 정상 간 소통이 지속적으로 유지돼왔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친서는 김 위원장이 6·12 북·미 정상회담 1주년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신 성격이 짙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친서에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고 했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답장을 받아든 김 위원장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북·미 정상 간 친서 대화가 오가는 사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20~21일)이 있었던 점도 의미심장하다. 시 주석은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연쇄 회담을 갖고 김 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G20 정상회의 직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깜짝 만날 수도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미 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무장지대(DMZ) 시찰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청와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비건 대표가 이번 주 중반 먼저 한국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권지혜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