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목선의 ‘제2 노크 귀순’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북한 어선이 독도 부근까지 남하했다가 스스로 북한 해역으로 돌아간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해군과 해경은 북한 해군이 조난 구조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이 선박에 대해 침범경위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5t급 북한 동력선 한 척이 22일 오전 9시쯤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남하해 독도 인근까지 내려왔다가 오후 8시쯤 NLL 연장선을 통해 북한 해역으로 되돌아갔다. 어선으로 짐작되는 이 선박에는 7명이 타고 있었다.
문제는 이 선박이 NLL 부근이 아니라 남쪽 깊숙한 지점인 독도 인근까지 남하했음에도 해군 당국이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군 초계기는 뒤늦게 독도 북동방 115㎞ 지점에서 이 선박을 발견했다. 해군은 초계기의 보고를 받자, 해경에 도움을 청했고 해경 1513함이 오전 10시4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이로부터 1시간 이상 지난 시점인 낮 12시10분쯤 북한 해군이 이 선박에 대한 구조를 요청한 것을 무선망을 통해 청취했다. 이때 이미 북한 선박은 북한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해경은 오후 4시52분 1513함에서 고속단정 1척을 내렸고, 오후 5시47분 또 1척을 내렸지만 아무일도 없었던 듯 오후 8시59분 고속단정을 철수시켰다. 북한 선박은 군인이 탔는지 민간인이 탔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되돌아갔다. 1513함은 우리 어선의 조업자제해역 중간수역까지 퇴거한 뒤 오후 9시53분까지 육안으로 감시하고, 오후 12시까지 레이더로 감시했다고 한다.
북한 선박이 “필요한 게 없다. 우리가 해결했다”며 도움을 완강히 거부하자, 승선을 통한 경위 조사나 조난 여부를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북한 해역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뒀다. 군 관계자는 “해군 초계기가 북한 선박을 식별해 관련 매뉴얼에 따라 해경에 통보했다”며 “통상적으로 귀순 의사를 확인해 귀순 의사가 없을 경우 북측으로 퇴거시키는 절차를 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우리 영해를 침범한 선박을 왜 침범했는지조차 조사하지 않은 채 되돌아가도록 방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 국적 선박이 영해를 침범했을 경우 군 당국과 해경은 반드시 승선해 조사하는 게 상식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해군과 해경은 이 선박이 어떤 경로로 남하했으며, 어선인지 여부도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양경찰청 이명준 경비과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 해군이 먼저 구조요청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현장에서는 다소 혼선이 있었다”고 했다.
앞서 해군과 해경은 동해 NLL 인근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홍보해왔다. NLL 인근에 군함과 경비 함정뿐 아니라 해군 초계기가 경계작전을 펴고 있으며, 해상작전헬기도 투입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NLL 인근에는 북한과 중국 어선 수백 척이 조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평년보다 해수가 따뜻한 동해에 오징어 어군이 몰리면서 이 해역에 어선이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과 경찰도 지난 15일 북한 목선이 강원도 삼척항에 아무런 제지 없이 입항한 뒤 추가 월선 가능성에 바짝 경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 내부에서는 해상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현재 16대인 해군 초계기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올해 북한 선박이 동해 NLL을 넘어온 사례는 60여 차례나 된다.
한편 국방부는 북한 목선에 대한 경계작전 문제 등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 20일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동해 경계를 맡는 해군 1함대와 육군 23사단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합동조사단은 이르면 27일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인천=정창교 기자, 김경택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