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 총수와 만나 미국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진행 중인 투자는 계속하겠지만 신규 투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허영인 SPC 회장, 박준 농심 부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 20여명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 없이 기업인들만 별도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에 대한 투자를 한 것에 사의를 표하면서 특히 삼성전자와 롯데를 추켜세웠다. 그는 “신동빈 회장이 오늘 자리를 함께하셨다”면서 “신 회장은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해 3조6000억원 투자를 하기로 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삼성과 롯데 건물에 대한 감상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 본사 건물을 보고 굉장히 놀란 적이 있다. 롯데타워도 처음에 보고 굉장히 감탄했다”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타워를 세운 데 대해서 저는 아주 잘하셨다고 축하의 말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재계 1위인 삼성전자와 최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롯데를 콕 짚어 언급, 다른 기업의 대미 투자도 독려하려고 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 현대차, SK, CJ, 두산을 이끄는 훌륭한 리더가 함께 했다”면서 총수들을 한 명씩 차례로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보다 투자 확대에 더 적절한 기회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대미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줄 것을 당부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면담 이후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밝힌 우리나라 기업은 없다. 미국 투자를 진행 중인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기자들과 만나 “추가 투자를 검토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신규 투자가 아닌 기존에 진행해온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이었다고 롯데 측은 설명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도 미국에 추가 투자 의향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역시 최근 미국에서 공격적으로 식품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연장선에서 나온 발언이다.
실제 대부분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 투자를 집행한 상황이라 당장 신규 투자를 결정할 상황이 있는 대기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탁기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공장을 운영 중이고, 현대차도 앨라배마 공장 투자를 올해 크게 늘렸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고, 한화도 미국에 태양광 셀 공장을 지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로 말을 하고 우리는 뭔가 요구하거나 입장을 얘기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면서 “필요한 경우 미국 투자는 언제라도 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발표할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 제재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계는 애초 화웨이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관측했으나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자 안도하는 분위기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협상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따로 발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준엽 이택현 김성훈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