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귓속말 밀담’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 차례 문 대통령에게 회담 내용을 설명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추후 상세한 회담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북·미 정상회담 내용을 문 대통령에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과 함께한 언론 인터뷰 전후, 자신의 전용차량인 비스트로 이동하는 사이, 차량 탑승 직전 귓속말을 통해 세 차례 회담 내용을 전달했다. 이 관계자는 “차량 탑승 직전 양 정상이 참모들을 모두 물리고 통역만 대동한 채 한동안 귓속말을 주고받았다”며 “중요한 내용들이 대화 속에 있었지만 지금 단계에서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회담 내용을 상세히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회동, 북·미 정상회담이 한꺼번에 열렸던 복잡한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의 복심인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막후 지휘 사실도 드러났다.
29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회동을 제안하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조선중앙통신 담화로 긍정적인 회신을 하자 청와대도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윤 실장은 29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 환영만찬에도 불참한 채 이튿날 새벽까지 김 위원장의 등장 여부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새벽까지 김 위원장 등장 여부가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며 “그러다 오전 8시 조금 넘어 윤 실장이 판문점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판문점에서 북·미 실무 접촉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별도로 미국, 북한과 경호·의전·보도 협의를 벌였다.
청와대 의전·경호팀을 제치고 윤 실장이 나선 데 대해 이 관계자는 “상황이 급박해 의전·경호팀이 따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 달의 시간이 있다면 정상적인 절차가 가능하지만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협의를 진행하긴 어렵다”며 “고유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윤 실장은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북측 의전을 총괄하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과 카운터파트로 일해 왔다. 각각 남북 정상의 핵심 참모들이다.
이번 판문점 회동에서도 두 사람이 긴밀히 협력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관계자는 “윤 실장은 각 정상의 하차 지점과 동선 등을 미국, 북한 측과 각각 논의했다”며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부연했다. 윤 실장과 김 부장은 지난해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이 개통됐을 당시 첫 시범통화를 했던 사이이기도 하다. 급박하게 이뤄진 이번 회동 과정에서 정상 간 핫라인이 사용됐을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 간 핫라인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밝히지 않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조선중앙TV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트럼프가 회담장에서 김 위원장과 악수하며 인사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또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양 정상 옆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도 보도했다.
강준구 손재호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