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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통역관, 실수하면 안된다는 중압감에 스트레스 심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통역을 맡은 채경훈 청와대 행정관이 문 대통령 뒤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역대 대통령과 영어 통역관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진 전 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일범 전 외교부 북미2과장(위 사진부터). 연합뉴스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는 정상회담의 한가운데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대통령 통역관이다. 이들은 외교 일선에서 대통령의 뜻을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국 정상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정상 외교는 항상 막중한 국익이 달린 일이어서 이들은 한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수요 많은 영어 통역은 청와대 소속

지난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또렷한 영국식 영어로 옮긴 채경훈 청와대 행정관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대통령 뒤에 앉은 젊은 통역관 입에서 매력적인 영국식 발음이 나온 게 신선해 보였던 것이다.

채 행정관처럼 영어를 담당하는 대통령 통역관은 청와대 소속으로 일하게 된다. 외무고시 41회로 2007년 외교부에 들어온 채 행정관은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외교정책비서관실에서 근무 중이다.

대통령 영어 통역은 업무 중요성을 고려해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외교관이 담당하는 게 최근 추세다. 채 행정관에 앞서 문 대통령 영어 통역을 맡았던 김종민 외교부 서기관도 경력이 10년 이상이었다.

대통령 통역관 중 영어 담당자는 외교부가 후보자를 올리면 청와대에서 낙점하는 식으로 선발된다. 외교부에서 경력과 평판, 영어 실력 등을 따져 소수의 후보를 엄선해 올리면 청와대가 종합적으로 평가해 결정한다. 영어 통역 담당자는 정권에 따라 청와대 외교정책비서관실에 소속될 수도 있고 의전비서관실에 들어갈 수도 있다. 대통령 통역 업무를 주로 하면서 소속 비서관실에서 다른 업무를 맡기도 한다. 정상회담과 같은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는 통역 준비에만 집중한다. 회담 의제에 관한 외신 기사와 각종 원어 자료를 숙지하면서 통역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영어 통역관은 임기가 특별히 정해진 자리가 아니어서 대통령이 원할 경우 임기를 함께하기도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부터 영어 통역을 맡은 인연으로 1998년 외교부에 특채된 후 김 대통령 퇴임 때까지 보좌했다.

다른 외국어는 외교부 소속이 겸임

영어 외 다른 외국어 통역은 외교부 소속 외교관이 담당한다. 평소에는 몸담고 있는 부서 업무를 하다가 정상회담 등이 있을 때 통역 업무를 맡는 식이다. 주 업무에 통역 임무가 추가되는 것이어서 부담이 큰 편이다.

대통령 통역 경험이 있는 외교관 A씨는 “평상시에는 원래 담당 업무를 하다가 통역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추가적인 일로 맡아야 한다”며 “담당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감각을 늘 유지해 통역에 지장이 없도록 신경써야 했다”고 말했다.

업무 부담뿐 아니라 현장에서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중압감은 대통령 통역관을 항상 따라다닌다. 통역의 작은 실수 하나가 정상회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대통령 통역은 틀리면 안 된다는 엄청난 압박감 때문에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했다. 다만 통역관들은 대통령 통역을 자신의 언어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회로 여기며,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격려를 받는 것도 남다른 보람이라고 말한다.

통역관이 사고치는 경우도

정상회담에서 통역관이 돌발행동으로 외교적 결례를 범한 적도 있다. 1990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 공식 만찬에서 통역관 B씨가 갑자기 만찬장에서 뛰쳐나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B씨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만찬사 통역을 소련 측 한국어 통역관에게 맡긴 게 불쾌해서 자리를 떴다고 나중에 밝혔다.

당시 노 대통령은 만찬행사 전 현지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 B씨가 통역을 서투르게 해 만찬사 통역을 그에게 맡기지 않았다. B씨는 미국 명문대에서 러시아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었다.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인사가 많지 않던 시기여서 B씨가 외교부로 특채됐지만 정상 통역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노 대통령 소련 방문을 수행했던 김종인 전 의원은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귀하던 시절의 해프닝”이라며 “만찬장을 박차고 나갔던 B씨는 귀국 직후 바로 사표를 쓰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대통령 통역으로 출세한 인사들

통역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승승장구한 인사도 많다. 강 장관이 대표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으면서 외교부에 들어갔던 강 장관은 유엔 근무를 거쳐 문재인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이 됐다.

외교부 내 대표적 ‘일본통’인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어 통역을 담당했었다.

3선 의원(16, 17, 18대) 출신으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지낸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이사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은 적이 있다.

배우 박선영의 남편인 김일범 전 외교부 북미2과장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통역관 출신이다. 그는 지난 4월 외교부에서 퇴직하고 SK 임원으로 변신해 화제가 됐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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