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9월 새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에 아이폰 생산을 맡긴 애플이 다급해지자 삼성전자와의 형평성까지 언급하며 ‘미국 기업인 애플을 보호해달라’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삼성은 관세를 내지 않고 애플은 낸다”면서 “이 문제와 관련해 단기간에 쿡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사흘 전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한국과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애플은 중국에서 만든다. 비교 대상이 아닌데 삼성을 끌어들여 애플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눈길을 끄는 건 팀 쿡 애플 CEO가 먼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했다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은 비싼 컨설턴트를 고용하지만 쿡은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한다. 그가 좋은 경영자인 이유”라고 추켜세웠다. 애플은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Xs가 비싼 가격 때문에 판매 부진을 겪었다. 쿡 CEO는 여기에 관세까지 붙으면 아이폰 신제품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애플이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했어도 아이폰 사용자 저변이 탄탄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폰 판매는 여전히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산 제품에 1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인 애플을 돕겠다고 했지만, 애플은 애국심보다는 이윤을 더 우선순위에 두는 행보를 보여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의 공장이 되돌아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심지어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에까지 관세로 압박을 가하며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했다. 삼성, LG는 세탁기 공장을 미국에 지어서 운영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이 미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애플은 그다지 호응이 없다. 애플이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화답한 것은 지난해 1월 역외수입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조건으로 세금 감면을 해줬을 때뿐이다. 애플은 2690억 달러(약 288조원) 가량의 사내보유금을 대부분 해외에 가지고 있었다. 미국 법인세가 높아 상대적으로 세금이 낮은 외국에 돈을 쌓아뒀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미국으로 들여오게 하려고 21%였던 법인세율을 일회성으로 15.5%로 낮춰줬다. 그러자 애플은 세금 380억 달러를 내고, 앞으로 5년간 300억 달러를 미국 내에 투자하겠다며 화답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 내에 새로운 공장을 짓겠다는 움직임은 없다. 애플은 아이폰 생산을 여전히 중국에 있는 폭스콘, 페가트론 등 협력업체에 맡기고 있다. 중국 인건비가 상승하자 인도, 베트남 등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생산지를 옮기려 하고 있다. 그나마 미국 텍사스에서 생산하던 맥 프로도 중국으로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제조원가 경쟁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애플은 최근 일자리 보고서를 내고 미국에서 지금까지 240만개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애플이 고용한 인력이 아니라 애플 협력업체를 포함한 것이다. 애플이 직접 미국에서 고용한 인원은 9만명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한국 사업장 고용인원(10만5000명)보다 적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