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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입진보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전성기에 ‘입스타’란 인터넷 용어가 등장했다. 스타크래프트를 입으로 한다는 뜻이었다. 게임의 전략과 전술을 다 꿰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정작 PC방에 가면 번번이 참패하는 이들을 가리켰다. 반대로 두 손을 현란하게 움직여 고난도 기술을 해내는 사람은 ‘손스타’라고 했다. ‘입’이란 접두어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이에게 한방 먹일 때 아주 효과적이어서 다양한 용례를 낳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입진보’였다. 말로만 진보를 외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이 표현은 2010년대 초 정치토론이 활발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명박정부를 공격하던 팟캐스트 ‘나꼼수’와 진보논객 진중권씨가 설전을 벌일 때 나꼼수 지지자들은 진씨를 입진보라 비판했고 진씨는 행동하는 진보를 주창하던 그들을 ‘발진보’라고 불렀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2011년 일찌감치 입진보에 이름을 올렸다. ‘진보집권플랜’이란 책을 내놓은 뒤로 SNS에 많은 말을 쏟아내자 두터운 팬덤이 형성됐지만 다른 쪽에선 입진보라고 야유했다. 강남좌파, 살롱좌파, 패션좌파 등과 비슷한 뉘앙스로 사용됐다. 조 후보자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받아넘겼다. “학벌 좋고 서울대 교수인 사람이 진보 이야기를 하니까 온갖 이중적 감정이 들겠지요… 제 활동에 대해 입진보다, 얼굴마담이다 하는 비난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죠. 입이라도 진보라고 불러줘서 감사하다고.” 8년이 흘러 다시 그를 향해 입진보란 비판이 나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6일 “조국 반대 여론은 입진보의 위선에 대한 탄핵”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조어는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경우가 많은데, 입진보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의미가 한층 명확해졌다. 조 후보자가 그 뜻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를 제공한 덕일 테다. 8년 전 그를 입진보라 공격한 이들에겐 ‘말과 다른 행동’의 근거가 없었다. 학벌 좋고 강남 살고 서울대 교수라는 사실이 진보와 어긋나는 행동일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던 법과 제도를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녀의 진로를 보살폈던 일이 드러났다. 불법은 아닐지언정, 스스로 인정했듯이 불공정한 기득권을 챙긴 행태였으니 언행 불일치의 단적인 사례로 충분하지 싶다. 입진보란 말에 고맙다 했었는데 이번엔 뭐라 대꾸하려는지….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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