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 현실을 이야기할 때 ‘넛크래커’(Nut-cracker) 현상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로는 기계 양쪽으로 호두를 눌러서 까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서는 기술과 품질이 뒤처지고, 개발도상국에는 가격경쟁이 밀리는 신세를 비유한 말이다. 어느 쪽으로든 경쟁력이 우위에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2019 글로벌 500대 기업’에 우리나라 기업은 16곳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해와 같은 숫자다. 반면 중국은 129곳으로 미국(121곳)을 제치고 올해 처음 1위에 등극했다. 일본도 52곳이었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15위에 머물렀다.
미국, 중국, 일본에 비해 경제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가 전 영역에 걸쳐 이들을 압도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당당히 세계 1위에 오른 경험이 있다. 미국, 일본보다 뒤늦게 뛰어든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1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차세대 먹거리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한국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도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망한 분야를 발 빠르게 선점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서면 얼마든지 경쟁력을 갖출 역량이 있다. 미래 산업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정부는 3대 신산업으로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미래 자동차를 선정하고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중소기업들도 경쟁력을 키워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각 기업은 현재 주력 산업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신규 산업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아울러 제품 경쟁력 못지않게 기업의 브랜드 경쟁력도 높여야 한다.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와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영역까지 고려한다. 나쁜 기업은 불매운동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이 얼마나 친환경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에 충실한지가 모두 경쟁력의 한 요소가 되는 시대다.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제품뿐만 아니라 제품이 생산되는 모든 과정이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보듬고,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기업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빼놓지 말아야 할 역할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