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국제가전박람회 ‘IFA 2019’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삼성전자의 폴더블 스마트폰과 LG전자의 롤러블 TV였다. 중국 업체들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전시공간과 신제품 출시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몇 년째 침체를 보인 일본의 경우 정부가 직접 참가 스타트업을 지원하면서 힘을 실었지만 효과는 보지 못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 전시 부스 앞에는 30~40명의 관람객이 줄을 섰다. 외신기자뿐만 아니라 블로거, 유튜버들도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영상을 찍느라 분주했다. 같은 날 LG전자 롤러블 TV인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전시 공간 앞에도 하루 종일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중국 업체는 과거보다 더 커진 위상을 자랑했다. IFA 전체 참가 업체(1814개) 중 47.5%(862개로)가 중국 업체였다. IFA 개막식이 열린 지난 6일, 중국 화웨이의 리처드 위 소비자부문 최고경영자(CEO)가 첫 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점도 IFA에서 강화된 중국의 위상을 보여준다. 이 자리에서 화웨이는 신작인 5G 통합칩을 공개하며 “우리가 글로벌 모바일 AI(인공지능)를 주도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의 TCL은 앞으로 갤럭시 폴드와 같은 폴더블 스마트폰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스테판 스트레이트 TCL 모바일 분야 글로벌 마케팅 매니저는 개막 전날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폴더블 스마트폰을) 현재 테스트 중이고 시장에 내놓기 전에 계속 향상시킬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최근 제품에 대한 기술 추격을 넘어서 AI, 사물인터넷(IoT)을 가전에 접목하는 기술 트렌드도 따라오고 있다. 하이얼은 냉장고 내부 신선품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이색 전시도 마련했다. 하이센스는 삼성전자, LG전자가 강조하고 있는 ‘스마트홈’과 유사한 ‘커넥트라이프’ 체험존을 마련했다. 화웨이는 대형 가전이나 눈길을 끌만한 쇼룸은 없었지만 브랜드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큰 만큼 많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국내 대표업체들도 중국 업체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문장 한종희 사장은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업체의 전시장을 가장 먼저 가보겠다”고 했고, LG전자 H&A사업본부장인 송대현 사장도 하이얼 등 중국 업체를 먼저 둘러봤다.
허태영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 상무는 “중국 브랜드는 기술 수용도가 빠르고 새로운 기술에 대해 쫓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중국 업체는 우리의 턱밑이 아니라 눈높이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본 업체들은 이번에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파나소닉은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제품이 없었고, 소니는 전시회를 통해 보급형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엑스페리아 5’를 공개했지만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IFA 참가 스타트업 지원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반향은 없었다. 일본 정부는 IFA 스타트업 전시인 ‘IFA 넥스트(NEXT)’의 첫 번째 글로벌 혁신 파트너 후원 국가를 자처했고, 경제산업성 고위 인사도 공식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하지만 독창성, 혁신성 측면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베를린=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