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으로서의 신유 그리고 두 가지 오해



성경은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표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표적은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 나타나는 이적을 말하는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의 이적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적을 행하셨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 아니었다. 유대인의 결례에 쓰는 돌 항아리를 사용하셔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는데, 이는 유대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선언하시고 예수님 자신이 구원을 가지고 온 메시아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사건을 이적이라 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신유를 가리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다. 표적으로서의 신유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유에 관한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오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유를 통해 치유를 받는다면 믿는 자들은 죽지 않는다는 말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는다고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신유는 신자가 육신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신유의 은혜를 덧입어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았다 해도 그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기간이 되면 육신은 죽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하신 일이다.

그렇다면 신유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초자연적 치유 역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종말의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이다. 육체의 질병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나타난 결핍의 현상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기로 했다.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단절됐고 죽음이 찾아왔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하고 풍성한 생명의 공급을 받았다. 영생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자 죽음이 사람을 지배하게 됐다. 사람은 자신의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죽음이 사람을 지배함으로써 나타난 결핍 현상이 육체의 질고다. 그리고 그 질고를 대표하는 것이 육체의 질병이다. 나무가 생명의 근원 되는 대지로부터 뿌리가 뽑혔을 때 서서히 말라 죽게 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예수님의 대속은 죄와 죄가 가지고 온 결과물인 죽음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신 구원의 사건이다.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사건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신유 사역을 단순히 병 고치는 사역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죽음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을 생명으로 옮기셨다는 구원의 강력한 표시다.

이러한 신유의 역사는 장차 신자들이 천국에서 누릴 전인적 구원과 영생을 미리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신자의 구원은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육 간의 전인적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영혼은 육신과 깊이 관계돼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우울해진다. 반면,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쾌활해진다. 신유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은 신자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생을 소망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믿는다고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오해를 풀어보자. 이런 오해가 발생하는 것은 치유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의 믿음이 동일하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구원에 빗대어 생각하면 된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다 구원 얻은 자는 아니다. 그중에는 아직 구원 얻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몸의 치유도 마찬가지이다. 치유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있을 때 신유의 역사가 임한다. 신유의 은혜가 임하느냐 임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신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질병과 저주를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을 때 신유의 은혜는 확실하게 나에게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종말의 메시아이심을 증언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문제 외에 하나님의 특별한 뜻, 예수님과 다른 우리의 온전치 못함 등이 치유와 관련돼 거론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믿는 자들에게 신유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드러내는 표적이요, 오늘날도 변함없이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오창균 목사<서울 대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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