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의 주인공 류정환(윤계상 분)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극로 선생(1893~1978)이 1923년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Humboldt University of Berlin)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했다는 독일 정부의 공식 문서(사진)가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이극로 선생이 독일유학 중이던 1923년 유럽 최초로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현재 베를린 훔볼트대)에 개설한 한국어 강좌 관련 독일 당국의 공문서와 자필서신 등을 수집해 제공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이 기록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4년 독일 국립 프로이센문화유산기록보존소에서 수집한 기록물 6철 715장 가운데 11장이다. 1868년 발생했던 독일인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사건 보고서, 한국주재 독일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정세 보고서 등 19~20세기 초 한국 정치·경제·외교 관련 기록물 등이 포함돼 있다.
경남 의령 출생인 이극로 선생은 1920년 중국 동제대학을 거쳐 1922년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경제학 박사과정에 들어가 1923년 유럽 최초로 이 대학에 조선어 강좌를 개설해 강의했다.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위원, 1930년 한글맞춤법 제정위원, 1936년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역임하고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구금됐다.
관련 기록물 11장 가운데 공문서는 5장으로 베를린 훔볼트대 동양학부와 독일 문교부, 이극로가 한국어 강좌 개설과 관련해 주고받은 것이다. 1923년 8월 10일 동양학부 발송 975호는 학장 대리가 문교부 장관에게 한국어 강좌 개설 허가를 요청한다는 것이며, 같은 해 8월 31일 문교부 발송 8593호는 이를 허가한다는 내용이다.
나머지 6장은 이극로가 타자기와 자필로 쓴 편지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1925년 1월 동양학부 학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극로가 한국어 강좌를 만들게 된 이유가 적혀 있다. 그는 “한국어가 200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동아시아의 세 번째 문화어이고 문자가 독특해 실용적인 측면 외에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도 독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2007년 이 기록을 발굴해 국내에 처음 발표한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은 “96년 전 이미 유럽인을 대상으로 한국어강좌가 있었고, 독일 학계에 알려진 1952년 한국어강좌 최초 개설을 29년이나 앞당긴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